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상하이 라오창팡, 소들의 죽음에 대하여

김경한 justin747@cstimes.com 2017년 04월 10일 월요일

opinion_top_01.jpg

그곳에는 지나간 시간의 역사가 박제되어 있었다. 모르스 부호 같은 겉면의 콘크리트 언어무늬 안으로 숨겨진 공간을 찾아 들어갔다. 근대적 ‘도살’이 시작된 곳의 기운이 남아있었다. 서양문명의 파도에 밀려 대규모 육류 소비가 현실화 되었을 때 꺼내 든 해결장소다. 그냥 지나친다면 낡은 창고 같은 평범함으로 위장된 건물이기도 했다.

1930년대 영국인 건축가의 설계로 지어진 라오창팡(老場坊)은 벌써 80년의 역사를 안고 있다. 현대화된 푸동(浦東)의 고층빌딩들과 달리 라오 상하이(老上海)의 소중한 유물이다. 말 그대로 옛것이다. 껍질 속 알맹이 같은 내부는 지하부터 지상 5층까지가 한 공간으로 연결된 원통구조물이었다. 외부를 연결하는 26개의 브릿지가 미로처럼 엉켜 있었다. 동물과 인간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면서 운명을 뒤바꾼 현장이다.

죽음을 아는 소들은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끌려가면서 그들의 마지막을 감지한다는 이야기다. 무수히 흔들렸을 생명들의 통로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앗다. 비스듬한 경사로에 들어서면 뒤에서 밀려드는 압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혹시 분노한 동물들의 공격이 있을 경우 이를 피하려는 기둥 뒤 대피공간이 특이했다. 효과적 타살을 위한 내부설계다. 이승과 저승이 미로속에 공존하는 다른 세계였다.

▲상하이의 명물 라오창팡 (도살장)

▲상하이의 명물 라오창팡 (도살장)

숫자는 시대와 사상의 상징이다. 조지오웰의 1984, 한국을 월드무대에 각인시킨 88올림픽, 게오르규의 25시, 1776년 미국독립선언처럼 ’라오창팡 1933’ 속에는 의미가 담겨 있다. 당시 이곳은 아시아 최대의 도축장이었다. 한때 상하이 전체 소비량의 70%를 처리했다. 1970년 창청생화학 공장으로 사용하다가 2002년 사용중지 명령으로 4년 공백을 거쳐 2006년 우수역사건물로 지정되었다.

이제 라오창팡은 ‘1933 크리에이티브센터’ 다. 더 이상 음산한 동물의 죽음 같은 기운은 느낄 수 없도록 모습을 계속 바꿔가고 있다. 예술촌을 지향하는 작가들의 디자인 전시장과 카페, 식당이 들어섰고 이벤트홀은 결혼식 명소로 유명해졌다. 죽음의 장소에서 열리는 결혼식은 역설적이다. 경건하고 엄숙한 백색 웨딩의 세리머리가 진혼제이기도 했으리라.

도살장으로 들어가던 소들의 길을 따라가면서 중간에 여러 번 길을 잃었다. 직선과 곡선을 조심스럽게 살펴야 다시 돌아오던 통로를 찾을 수 있었다. 동물과 인간의 인연이 엉킨 만다라의 길 같았다. 그 공간에서 무수히 사라진 목숨들의 의미가 가볍지만은 않았다. 윤회의 종말이 소였으며 사람으로 환생한 내가 죽은 생명의 잉태를 안고 나온 인간이었다는 가설에 매달려 다른 세계를 더듬어 보고 싶었다.

▲라오창팡 내부 3층에서 본 미로의 구조

▲라오창팡 내부 3층에서 본 미로의 구조

미로는 소와 사람이 전생과 현생을 관통하며 공존하고 있었다. 죽음의 저쪽세계와 삶의 이쪽세계 사이에 서있는 나를 보았다. 이것을 부수지 않고 보존을 생각한 중국 사람들의 발상에 경의를 표하면서.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동물들의 영혼이 확장되어 내안으로 들어왔다. 돌고 돌아 그 밤이 다시 오고 지나갔던 시간까지 같은 공간으로 모아지듯 삶도 죽음도 그 반복의 고독한 행렬이라는 사유에까지 이르니 마음상자가 텅 비어갔다.

아직 햇빛이 남아있는 바깥 풍경은 봄기운이 완연했다. 면벽한 선사의 고요한 명상 같은 침묵만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순간순간이 이어져 흘러가는 것이 일상이다. 가끔 꿈꾸는 탈출, 이렇게 소리도 없이 절제된 공간에 스스로를 가둬보는 것은 드문 기회다. 나뭇잎이 다시 태어나 계절을 맞아들이는 외부세계처럼 소들의 기억은 라오세계의 완성이었다. 죽음은 신성한 윤회의 시작인 것을 현생의 덧없음으로 이겨내 보려는 물음이 대신 솟아오르는 오후다.

피카소는 생전에 한 마리 소를 그렸다. 다시 그걸 지우고 지워 간단한 선으로 마무리 시켰다. 그 선은 소의 본질이다. 소는 선속으로 숨어버렸다. 몇 가닥 영혼만 남겨 놓았다. 육중한 소 한마리가 11번의 드로잉 과정을 거쳐 마침내는 가느다란 입체선의 결론에 도달한다. 신기한 일이다. 뉴욕 구겐하임의 기억과 라오창팡의 역사가 하나의 프리즘 속으로 모아졌다.

▲ ▲피카소의 걸작 소 드로잉 작품
▲ ▲피카소의 걸작 소 드로잉 작품

동물은 영혼이 없고 죽은 후에는 땅으로 꺼진다고들 한다. 하지만 도살장 앞에서 굵은 눈물을 흘렸을 소들을 상상해보면 혼란스럽다. 동물과의 교감을 강조하는 전문가들은 에니멀 커뮤니케이션으로 70% 이상 소통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애커’들의 말대로라면 인간은 최소한 동물사냥 때 그 영혼에 감사기도를 올리는 인디언의 정성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영혼들의 여행. 마일클 뉴턴). 우리가 어떤 선택에 의해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맑은 동물의 영혼을 빌려 태어난 것으로 믿는다면 말이다.

이곳은 확실히 20세기 초 제국들의 강압된 힘이 얼룩진 장소다. 자취는 이제 상처가 아닌 창조공간으로 디자인되고 있었다. 그 시대처럼 예술이 찬란히 꽃피었던 라오상하이로의 회귀다. 푸쉬(浦西)의 인민광장이나 와이탄의 중국적 정신문화 궤적을 닮아가고 있었다. 도살장의 어두운 기억은 예술적 에너지의 기폭제로 점화되고 있었다.

숨막히는 현실로부터 역사속으로의 즐거운 도망이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무줄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쇠처럼 이상하게 높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들풀. 루쉰) 제국주의에 대한 분노를 가라앉히면서 차분하게 ‘도살장’ 시대를 관찰했던 중국최고의 문호 루쉰의 시선으로 라오창팡을 그려보았다. 1930년대 그의 사색에 접근해 “아침 꽃을 저녁에 줍는 자세” 로 남은 세월을 보내리라는 다짐도 하면서.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대표기자 justin-747@hanmail.net


ⓒ 컨슈머타임스(http://www.cstime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