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건설사 담합 퇴치, 공정위 '역할' 이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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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건설사 담합 퇴치, 공정위 '역할' 이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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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김수정 기자] 지난 2015년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대규모 사면이 있었다.

담합으로 걸려 입찰참가제한 등 행정제재를 받은 건설사들이 대거 풀려났다. 이들은 특별사면에 대한 화답으로 '자정'을 결의했다. 이후 간간히 실천 노력도 했다.

적어도 겉보기엔 마냥 헛구호가 아니었다. 그들 스스로 이전과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자신한다. 구시대적인 불공정 경쟁을 근절할 때가 됐다는 점에 공감한다. 강화된 담합 규제를 받아들일 준비도 어느 정도 됐다.

그러나 '법이 가혹하다'는 내심을 숨기진 못한다. 9년 동안 담합행위에 따른 공정거래위원회 과징금을 3회 부과 받으면 바로 건설업면허가 말소돼 5년 간 재등록을 할 수 없다니. 담합 '삼진아웃' 적용 기간을 9년으로 강화하는 건설산업기본법의 국회 본회의 입성을 앞두고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현행 삼진아웃제는 허수아비다. 담합으로 과징금 처분을 받은 회사가 3년 안에 2회 더 같은 이유로 과징금을 부과 받으면 퇴출시킨다는 내용인데 추가로 받는 과징금의 대상 행위가 1차 과징금 부과일 이후 발생한 것이어야 한다.

행위 적발에서 과징금 부과까지 2~3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3년에 3회'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 2012년 이 제도 시행 후 담합행위로 퇴출된 건설사는 없다.

때문에 이 법의 실효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지난해 이 법이 발의됐을 때 드러내놓고 반대하는 관계자들을 향해 '그럼 담합을 계속 하겠다는 것이냐'라는 의문 섞인 비판이 제기됐다. 이들은 과연 겉으로 자정을 외치고 뒤로는 담합을 놓지 못하는 표리부동한 사람들일까.

한국수자원공사가 발주한 초대형 국책사업인 경인운하(아라뱃길) 사업에 입찰한 건설사 11곳이 총 991억원의 과징금 폭탄을 맞은 적이 있다. 공정위는 건설사 11곳이 미리 낙찰자와 들러리를 정해 공사를 나눠 먹은 정황을 포착했다며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런데 과징금 부과 받은 기업 중 한 곳인 SK건설이 제기한 과징금 처분 취소 소송에서 판이 뒤집혔다. 지난해 7월 서울고등법원은 SK건설이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담합하지 않았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대구지하철 3호선 공사 입찰 담합 관련해 50억원대 과징금을 부과 받은 삼성물산과 현대건설도 지난해 6월 공정위 과징금 취소 소송에서 승소했다. 해당 사건에 연루돼 검찰 고발된 5개사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번에도 증거가 없다는 게 법원의 시각이었다.

이들이 정말 무죄인지 유죄인지, 진실은 당사자가 아닌 누구도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공정위가 잇따라 패소하면서 공정위의 결정이 신빙성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공정위 결정이 법원에서 뒤집히는 경우 대부분 그 이유가 증거불충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공정위가 과징금 부과할 때 내미는 증거의 상당부분이 정황증거다. 바꿔 말하면 공정위가 물증 없이 과징금을 때린다는 얘기도 된다.

삼진아웃 법이 강화되면 정황만으로 내려진 과징금 때문에 억울하게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사실이 업계를 긴장시키는 것이다.

지난해 기업들로부터 잇달아 패소한 이후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에 정보교환을 담합 증거로 명시하려 했다. 업체 간 가격 등 특정 정보를 공유한 사실을 곧 담합으로 간주하는 근거를 구체화해 법을 개정하려 한 것인데 결국은 흐지부지됐다.

중요한 건 법 개정이 아니라 치밀한 조사 체계를 갖추고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공공 공사 담합으로 건설사가 챙기는 부당 이득은 국민들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이런 기업을 봐줘선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개정안이 본회의 문턱을 꼭 넘길 바란다.

이 법이 빛을 발하려면 공정위의 임무가 막중하다. 무고한 기업에 사형선고를 내리는 순간 법 취지는 훼손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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