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영장 기각 '숨은 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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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부회장 영장 기각 '숨은 1cm'
  • 김재훈 선임기자 press@cstimes.com
  • 기사출고 2017년 01월 19일 15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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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의 늦었슈] 꽉 막힌 구치소 15시간…'클린 삼성' 원년 기대

'늦었슈'는 '늦었다'와 '이슈'를 결합한 합성어입니다. 이른바 '한물간' 소식들 중 여전히 독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사안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합니다. 물론 최신 이슈에 대한 날카로운 의견도 제시합니다. 놓치고 지나간 '그것'들을 꼼꼼히 점검해 나갈 예정입니다.

   
 

[컨슈머타임스 김재훈 선임기자] '증거는 충분해. 해명도 충실하고. 도주 우려는 없어. 그런데 말이지…'

다양한 성향의 판사들을 그간 목도해 왔습니다. 과거 법무부 소속 '경비교도대원'으로 2년 여 군생활을 했던 당시 각종 사건에 배당되는 판사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법원을 오가는 지루한 계호 업무에 단비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 속 풍경과 달리 심리로 시작해 결심에 이르는 재판 전 과정은 마냥 딱딱하지만은 않습니다. 표정 변화 없는 '로봇형', 네 잘못을 네가 아느냐 '호통형', 듣고 보니 안타깝다 '감성형' 등 각 판사의 개성에 따라 공기가 달라집니다.

기억 언저리에 남아 있는 어느 한 판사의 모습이 있습니다.

"직장 상사가 아무리 기분 나쁘게 했다 하더라도 사람을 이걸로 때리면 됩니까? 회사 생활이란 전세계 어딜 가나 부당해요. 내 마음에 드는 회사는 없다는 말입니다. 법복을 입고 있는 나 역시 부당한 경험에 익숙합니다. 참고 또 참다 보니 시간이 흘러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을 뿐입니다. 잘했다는 생각을 지금도 품고 지냅니다. 피해자에게 지금 바로 진심을 다해 사과하세요. 합의금 공탁 여부를 떠나 그것이 온전한 합의입니다."

증거물로 채택된 빈 소주병이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흔들며 그는 엄중히 말했습니다. 경우에 따라 살인미수까지 갈 수 있었던 사안이었습니다. 가해자는 눈물을 흘리며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피해자가 다가가 악수를 청했습니다. 그 역시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우리 앞으로 다시는 보지 맙시다. 이런 일 생기면 판사들도 일 많아져서 힘들어요. 혹시라도 또 욱하는 마음이 생기면 오늘을 생각하며 버티세요."

불구속 상태에서 법정구속까지도 갈 수 있었던 사안은 그렇게 벌금형으로 마무리 됐습니다. 법정에는 일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피어났습니다. 재범을 막기 위한 판사의 기지가 빛을 발한 순간이었습니다.

지난 18일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마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서울구치소로 향했습니다. 특검 사무실이나 법원에 머물 것이라던 당초 예상을 깬 건데요. 직후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구속될 것이란 우려가 빠르게 번졌습니다.

미래전략실 최지성 실장과 장충기 차장이 불구속 된 이유와 교차점을 형성하면서 보다 무게가 실렸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마저도 빗나가 일부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는데요.

그런 만큼 조의연 부장판사 속내에 여론의 궁금증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19일 오후 5시 현재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조 판사의 이름이 노출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수치화하긴 어렵지만 긍정의견 보다는 비난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친재벌 판사'라는 힐난도 SNS상에 가득합니다. 한쪽으로 치우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울 정도네요. 그런데 한걸음 더 들어가보면 얘기는 조금 달라집니다.

법조계에 알려진 조 판사는 '원칙주의자'에 가깝습니다. 판단함에 있어 차가울 만큼 법에 기반함은 물론 검토에 검토를 거치는 진중한 스타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로봇형'에 가까운 것으로 사료됩니다.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 가능성이 세간에 높게 점쳐졌던 이유입니다. 드러난 증거가 뻔하니 피할 수 없다는 논리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대목은 여기에 구속 사유를 대입하면 정 반대의 상황이 전개된다는 겁니다.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관할 지방법원 판사의 구속영장을 발부 받아 피의자를 구속하는 경우 구속사유는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증거인멸의 염려나 도망 또는 도망의 염려가 있는 경우이다.'

형사소송법 제 69조에 적시된 내용입니다.

'드러난 증거가 뻔한데다 피할 길이 없는' 이 부회장을 굳이 구속할 이유가 없다는 반론이 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더 캐낼 것이 있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는데요. 삼성은 이미 검찰의 거듭된 압수수색과 수뇌부들을 향한 조사로 인해 '너덜너덜' 해진 상태입니다.

그렇더라도 '재벌 봐주기' 식으로 사회적 감정이 응집되는 상황은 조 판사 입장에서 신경 쓰일 수 밖에 없었겠지요.

이 부회장에게 구치소 대기를 명령한 게 어쩌면 조 판사 스스로에 대한 타협점은 아니었는지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증거는 충분해. 해명도 충실하고. 도주우려는 없어. 그런데 말이지 이런 일도 또 반복되지 말란 법이 없잖아. 이 기회에 이 부회장이 뼛속 깊이 새길 큰 자극이 필요해.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결탁한 후진국적 범죄는 이것으로 종료돼야 한다.'

서울구치소에서 대기한 이 부회장의 꽉 막힌 15시간. 향후 이 부회장과 삼성의 행보가 조 판사의 숨은 의도를 자연스레 감안해 내지 않을까 전망해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이 부회장의 진짜 숙제는 이제부터 시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17년이 부정부패를 원천 차단하는 '클린삼성' 의 원년이 돼야 한다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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