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랜드, 진심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상태바
[기자수첩] 이랜드, 진심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컨슈머타임스 김종효 기자]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할 정도로 참담하고 수치스럽습니다"
"책임을 통감하며, 이를 계기로 진심으로 거듭나고자 합니다"

새해가 시작된 지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던 지난 6일, 이랜드그룹(이하 이랜드)은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발표, 당시 불거진 노동자 임금 체불 논란에 대해 고개 숙이고 개선안을 발표했다.

대기업의 발빠른 사과였지만 대중의 시선은 싸늘했다. 대중은 10년 전 홈에버 사태 당시 노동자에 대한 '갑질' 논란이 불거지자 즉각 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한 이랜드에 대해 기시감과 불신감을 동시에 느꼈다.

다른 기업보다 이랜드의 '대기업 갑질'이 대중에 깊이 각인된 이유는 영화 '카트'와 최규석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JTBC 드라마 '송곳'의 영향이 크다.

두 작품 모두 각각 '더 마트'와 '푸르미마트'라는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2007년 이랜드 홈에버 비정규직 노조 해고 사태를 모티브로 해 제작됐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랜드는 2006년 한국까르푸를 인수해 할인점 홈에버를 운영했다. 이랜드는 까르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으나 2007년 5월, 비정규직 관련법 시행을 앞두고 홈에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했다.

부당해고에 반대하는 해고 노동자들은 마트를 20일간 점거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고 결국 2008년 홈에버가 홈플러스에 매각된 뒤 노사협상이 타결됐다. 당시 해고됐던 노동자 중 일부는 해고 후 무려 510일이 지난 후에야 마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랜드 홈에버 사태를 소재로 해 후원형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된 '카트'는, 독립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염정아, 김영애, 문정희 등 상업 영화에서도 인정을 받는 배우들은 물론 거대 팬덤을 거느린 아이돌 엑소(EXO) 멤버 디오도 비중있는 역으로 출연해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부지영 감독은 물론 배우들은 저녁시간대 뉴스 등에 출연, 적극적으로 영화의 취지 등을 설명하는 등 영화 내적·외적으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사회적 경종을 울렸다는 호평을 받았다.

웹툰으로 제작돼 인기를 끌었던 '송곳' 역시 같은 소재를 다뤘다. 당시만해도 선입견이 강했던 '종편'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JTBC가 비정규직, 노동조합 등을 다룬 동명의 웹툰을 드라마로 제작한다는 점 때문에 제작 전부터 주목 받았다.

지현우, 안내상 등 주연 배우들은 웹툰의 명대사를 육성으로 전해 큰 울림을 줬다. "서는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오는거다" 등 '송곳'의 대사는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공감을 일으켜 현재까지도 인용되곤 한다.

이처럼 '카트'와 '송곳' 등 훌륭한 작품들이 이랜드의 '대기업 갑질'을 견제했지만 이랜드는 또 '대기업 갑질'을 자행했다. '카트' 개봉이 2014년, '송곳' 방송이 2015년이니 이랜드가 그간 과연 반성이라는 것을 해왔는지조차 믿기 힘든 상황이다. 이랜드 계열사인 애슐리의 임금체불 의혹을 폭로한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이번 이랜드의 사과문 발표 후 "사과의 진정성을 인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카트'와 '송곳' 등 대중문화의 소재가 될 정도로 이랜드는 우리 사회 반(反)노동기업의 상징"이라고 질타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지만 10년이 지나도 이랜드의 '대기업 갑질' 행태는 변하지 않았다. 10년 전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피해자였지만 이번엔 정규직 노동자들도 피해자이니 오히려 더 '갑질' 규모가 커진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은 이랜드가 내놓은 경영진 인사와 전 계열사 전수조사 등 특단의 조치에 대해서마저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이랜드가 진성성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억울해할만한 상황은 아니다. 이랜드의 기업 이미지는 이미 추락한 상태다.

이랜드가 대중문화 소재가 되는 것은 결코 자랑스러워할 일이 아니다. 대중문화의 '고급스러운' 견제에도 지금과 같은 반노동적 기조를 이어간다면 그 다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소비자 탄핵'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투데이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