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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서도역에서 타오르는 '혼불'

김경한 justin747@cstimes.com 2016년 11월 14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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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 철길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몇 년 전 전라선이 옮겨져 문을 닫은 서도역(書道驛)은 쓸쓸하게 가을을 지키고 있었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하다. 전주에서 여수로 내려가다 산성역과 오수역 사이에 지어진 오두막 건물, 유리창이 깨지고 판자를 덧댄 칸막이 사이로 시간이 흘러들어 남루해진 흔적이 역력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기차역이다. 75년(1932년 개통-2008년 폐쇄)이나 온갖 사연을 실어 날랐던 열차는 먼 기억 속으로 떠나고 없었다.
한국민족문학 최고의 수작으로 꼽는 최명희(崔明姬. 1947-1998)의 대하소설 ‘혼불’ 은 이 서도역에서 시작되었다. 남원 매안마을 이씨 종가 집에서 며느리 삼대를 이어 온 청암부인과 그 아들 이기채 부부, 손자 이강모 효원 부부, 거멍골의 천민 춘복이의 이야기다. 일제 강점기 고단한 시대를 살던 사람들의 삶이 가슴 아프게 담겨져 있다. 책이 출판된 1997년 외환위기 때 내가 밥벌이하던 언론사까지 문닫을지도 모른다는 어지러운 세상을 탓하며 주로 새벽에 탐독했던 기억이 새롭다.

소설은 강모와 효원의 혼례로 시작된다. 그러나 강모는 초야를 치루지 못한다. 이미 사촌누이 강실이와의 사랑이 마음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뇌하던 그는 만주로 떠나고 남겨진 효원이 홀로 공규(空閨.아녀자들이 거처하는 빈 규방)를 지키며 시할머니 청암부인의 뒤를 이어 가문을 이끄는 비극의 주인공으로 그려진다. 거멍골의 천민 춘복이는 강모의 옛사랑 강실이를 사모한 끝에 그의 씨앗을 수태시킨다. 양반과 평민, 천민의 세월들이 뒤섞여 남원과 전주, 만주를 무대로 부단하게 이어진다.

책을 읽고 20년이 지났다. 못다 한 숙제를 푸는 심정으로 낙엽 지는 가을날 끝자락에 최명희 문학관을 찾았다. 국어선생님을 그만두고 17년 동안 집필에 전념한 끝에 탄생시킨 혼불은 작가를 죽음으로 몰고 가 결국 유작이 되었다.(5부 10권에 이어 4.19와 한국전쟁을 담으려던 6부 이하는 미완성이 되고 말았음) 암을 숨긴 채 무섭게 정진하며 써내려간 현대문학의 보물이다. 소설이라기보다는 한국의 20세기 100년이 담겨져 있는 위대한 사상서다.

▲사람들의 왕래가 끊긴 남원 서도역
▲사람들의 왕래가 끊긴 남원 서도역

기후, 풍토, 관혼상제, 산천초목, 습관, 사회제도, 촌락구조, 역사, 통과의례, 주거, 음식, 가,구, 그릇, 복장, 소리, 언어, 몸짓 등 당대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혼불을 “우리풍속과 모국어의 보고” 로 부르는 이유를 알만하다. 전통문화의 원형에 가깝게 민속정보를 형상화해서 유려하게 묘사한 솜씨는 독보적이다. 설화, 민요, 판소리, 천리, 담론이 운명처럼 얽혀져 전개된다. 주제가 모아졌다가 흩어지는 반복은 시(詩)나 운문을 대하는 듯한 예술의 경지다.
근대사의 격랑을 목격한 세대의 유언을 최명희 그가 후세대에 꼭 전해줘야 한다는 마지막 전령사의 심정으로 썼으리라. 아무리 생애가 멀리멀리 흘러갈지라도 자기 존재의 근원을 떠올릴 때면 까닭도 없이 핏줄이 저린다. 인간의 본능이다. 뿌리를 건드리면 줄기와 이파리까지 떨리는 법이다. 혼불은 한국인의 영혼을 두르리는 글이다.

문학관 돌계단을 오르니 왼쪽 방에는 작가의 목숨 같았던 만년필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잉크병과 낯익은 원고지들. 인월댁의 베짜기나 강모 강실이의 소꿉놀이 장면, 청암부인의 장례식 모습들이 인형으로 현세에 살아 있었다. 꽃심관 사랑실과 소마루의 ‘소살소살’ 쉼터에서 하루의 피로를 내려놓고 주저앉았다. 마당에 나와 보니 멀리 장수 팔공산이 보이고 오른쪽에는 보절면 천황산이, 그 옆 멀리로 지리산이, 뒤로는 노적봉이 굽어보고 있었다.

혼불은 우리 몸 안의 불덩어리다. 사람이 제 수명을 다하고 죽을 때 미리 그 몸에서 빠져나간다는 ‘목숨의 불’ 이자 ‘정신의 불’ 이다. 이 땅에서 한 생애를 다했던 수많은 이들의 울음과 속삭임이 최명희의 가느다란 손끝을 통해 세상에 전해졌다. 1998년 51세의 젊은 생을 접고 저 세상으로 떠난 그녀를 떠올리면 늘 가슴이 먹먹하다. 아름다움과 아련함, 근엄함과 서러움, 밝음과 어둠이 수없이 교차하는 대 서사시를 남기고 눈발이 내리던 초겨울 이승을 작별했다. 언어에 대한 사랑이 유난히 깊었던 최명희는 전라도와 만주를 오가며 글쓰기를 인생의 업보로 여기다 갔다.

▲최명희 작품 세계를 종합해놓은 문학관
최명희 작품 세계를 종합해놓은 문학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조상들은 무엇을 먹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다가 갔는가. 근원을 알고 싶은 생의 담론은 세대를 이어 혼볼에 온전히 녹아있다. 그 목마름을 해소하려고 한 페이지씩 물을 마시는 심정으로 사람들은 이 소설을 뒤적이며 어려운 시절을 건너왔다. 토지(박경리), 태백산맥(조정래), 객주(김주영), 장길산(황석영)을 넘어서는 시대문학의 봉우리다.

“쓰지 않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때때로 나는 엎드려 울었다. 갚을 길도 없이 큰 빚을 지고 도망 다니는 사람처럼 항상 불안하고 외로웠다. 좀처럼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모아놓은 자료만 어지럽게 쌓아 놓은 채 핑계만 있으면 안 써보려고 일부러 한눈을 팔던 처음과 달리 거의 안타까운 마음으로 쓰기 시작한 이야기 ‘혼불’ 은 나도 어찌하지 못할 불길로 나를 사로잡았다”

최명희의 고백을 되 뇌이며 문학관을 돌아 나와 소설의 무대인 최씨 종가와 청호저수지, 달맞이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단아한 초가집, 이끼 가득한 흙벽돌, 우우우 소리를 내는 대나무 숲. 그곳을 지나는 바람이 사라진 옛 사람들의 혼을 불러오는 것 같아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누구의 말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지 않고 이 땅의 너른 품안에서 다채롭게 살아가는 생명들의 사연을 풀어헤쳐나가는 솜씨에 경탄할 뿐이다. 엄청난 문장 속에 들어있는 서정성과 향토색, 한 문장을 읽고 나서 반드시 고개를 흔들게 하는 해박함, 손가락이 녹아내리고 영혼을 짜내야 가능한 작업이다.

“저는 주로 밤에 글을 씁니다. 한번 쓰기 시작하면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쓸 때도 있어요. 신들린 듯 쓰지요. 왜 ‘휘몰이’ 라는 말이 있지요. 정말 그렇게 미친 듯이, 무당이 주술을 풀듯이 써요.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처럼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파나가는 것 이지요”

인생살이도 이처럼 치열한 것이리라. 2006년 진달래와 철쭉이 차례로 피던 봄에 그의 향기를 담은 문학관이 세워졌다. 하지만 최명희의 정갈한 고통과 처연한 아름다움은 지상에서 찾을 수 없다. 이미 오래전 죽음을 맞이한 작가의 나이보다 더 살아버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저 고개 숙이고 남은 생을 추슬러 세워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하루하루를 파내려가는 심정“으로 살아야 되는 것이 아닐까. 이제 역사가 되어버린 최명희는 등 뒤에서 그렇게 당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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