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왜 연예인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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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왜 연예인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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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김종효 기자]

'가만히 있으라'

지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참사 당시 기울고 있는 선내에 흘렀다던 방송 내용이다.

해당 방송을 한 선원들이 승객들을 버리고 가장 먼저 탈출한 것도 문제였지만, 승객들이 방송을 믿고 정말 '가만히 있다가' 침몰하는 배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은 참사에 괴로워하는 이들의 가슴을 또 한 번 후벼팠다.

300여명 희생자를 낸 세월호 참사의 발단이 된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위기 속에서도 믿을 곳이 없다는 슬픈 현실을 단적으로 증명해 국민들을 허탈하게 만들었고, 거짓으로 통제되는 현실의 표본을 보여줬다.

최근까지 연예계를 향해서도 이 '가만히 있으라'는 압력이 있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소신 발언을 해오던 연예인들의 목소리가 최순실 씨의 국정개입 의혹이 불거진 뒤 더 커지자, '가만히 있으라'는 일부의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졌다. 처음엔 연예인의 사회참여를 불편하게 여기는 일부의 의견이라 여겨졌지만,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라는, -사실이 아니길 바라는-말도 안되는 명단이 공개되면서 연예인들에게 쏟아진 '가만히 있으라'는 강압을 정부가 주도했다는 의혹도 강하게 제기됐다.

'소셜테이너'라는 말은 언제부턴가 '폴리테이너'와 동일시됐다. 사회적 현안을 얘기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정책을 논해야 하고 이는 정부나 특정 당에 대한 의견까지 확장되곤 한다.

이에 사회적 현안에 대해 언급하는 연예인들은 '정치색이 다분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따로 분류됐다. 정치적인 의견을 드러내는 연예인들, 즉 소셜테이너-이자 폴리테이너-를 비판하는 기저엔 '감히 연예인 따위가', '하는 일이나 잘할 것이지', '선동으로 인기를 얻으려 하나' 등 연예인을 국민의 한 사람이 아닌, 대중의 관심을 먹고사는 '천한 딴따라'로 보는 정서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몇몇 연예인들은 본인은 물론 그 소속사까지 '민감한 발언'에 조심스럽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형 연예 기획사 관계자는 "SNS 시대가 도래하다 보니 소속 연예인이 SNS에 뭘 올리는지도 수시로 살펴봐야 한다. 민감한 발언을 게재하기라도 하면 '기자들에게 전화가 오기 전에 삭제하라'고 종용한 적도 있다. 이미지가 굳어지기 때문에 가급적 사회적 현안에 대한 발언은 자제해달라고 요청한 적도 있다"고 말해 자발적 내부 검열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SNS에 "나라가 어'순실'해서 모두 화가 났나요?"라는 글을 올렸던 배우 전혜빈 역시 KBS 2TV '드라마 스페셜-국시집 여자' 기자간담회에서 해당 발언에 대한 질문을 받자 "나라가 건강하지 못한 상태고 어수선한 것 같아 올린 글이다. 사실 회사 실장님에게 살짝 혼났다. 소신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더 이상 일이 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상황을 마무리했다. 이렇듯 사회적 현안에 대한 발언은 연예인 본인에게도 큰 부담이 되곤 한다. 전혜빈의 급한 마무리에 대해 더 이상 아쉬움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은 그런 상황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많은 연예인들이 폴리테이너, 혹은 소셜테이너의 행보를 걷는 이유는 분명하다. '상식적으로 정의로운 사회'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정의'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모든 이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정당한 방법으로 추구하고 표현할 권리가 있다.

뮤지션 이승환은 "연예인 이야기는 시시콜콜 그렇게들 하면서 왜 정작 먹고 사는, 아니 죽고 사는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시하나?"라고 일침을 가했으며 "불의 앞에선 중립을 지킬 수 없고 외면할 수도 없다"고 소신을 밝혔다. 이승환은 "상식에 어긋나는 일에 대해 내 상식을 얘기하면 '정치인 하려고 그러는 거냐'는 편협하고 조잡한 생각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11월 12일, 이승환은 서울시청 광장 앞에서 진행된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집회 현장서 "야당 정치인 여러분, 혹시나 제가 그 정치인들 편인 것 같아서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좋아하지 말라. 나는 시민들 편이지 정치인 편은 아니다. 나는 노래하는 가수고 국민들 편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말씀드린다"며 "야당 정치인들은 지금이라도 재지 마시고 간보지 마시고, 국민들의 뜻에 따르라는 말씀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승환에겐 앞서 언급한 '상식적으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소신이 있다. 거기엔 여와 야가 따로 없다. 이승환은 여러 차례 SNS와 방송 등에서 이같은 의견을 피력해왔다.

평소 정치와 일부러라도 거리를두고 살아왔다던 뮤지션 고(故) 신해철은 과거 "지금 이 시기에 내가 그냥 아무 일도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다는 것, 그것을 견딜 수가 없었고 평소에 정치와 거리를 둬야 한다는 고집도 내가 믿는 더 큰 것이 있다면, 더 소중한 것이 있다면 그 고집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정치·사회와 관련된 발언을 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또 "우리가 사람답게 사는 것과 정치가 무관하지 않다. 정치가 잘못되면 우리가 사람답게 살 수가 없다. 우리가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정치가 바뀌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목소리를 내야만 하고,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안 되고, 우리가 가진 권리를 행사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 권리에는 책임이 따른다.

배우 공유는 지난 2005년 한 패션지와의 인터뷰에서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장 멋지고 존경스럽다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7년이 지난 2012년 새삼스럽게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연예인들은 이번 '국정 농단' 사실이 불거지면서 인터넷에 강제 줄소환됐다. 반대로 방송인 김제동과 이승환 등의 기사엔 기사 내용과 상관없이 '빨갱이'라는 댓글이 달리기도 하고 '연예인 그만두고 정치하라'는 조롱조의 댓글도 심심찮게 보인다. 어쩌면 연예인에게 있어 생명줄인 '인기'의 절반을 포기한 용기 있는 결단, 그게 소셜테이너가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한 책임일지도.

이전부터 사회적 현안에 대해 언급해온 연예인들의 목소리는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 '의혹'이 박근혜 대통령의 입을 통해 '사실'로 밝혀진 뒤 더 높아졌다.

김제동은 최순실 씨가 입국 후 하루 정도 몸을 추스를 여유를 달라고 했다는 보도에 대해 "지금 몸을 추슬러야 할 사람들은 우리 국민들이다. 지금 그런 위로와 대우를 받아야 할 사람들은 우리 국민들"이라고 질타했다. 배우 김의성은 "가장 화가 나는 것은 몰랐을 리가 없는 사람들이 몰랐다고 잡아떼는 것"이라며 현 상황에 '모르쇠'로 일관하는 관련자들을 향해 울분을 토했다. 뮤지션 윤도현은 "절망은 희망으로 가는 길에 여러 번 만난다. 검찰이 쥐고 있는 열쇠가 제발 희망의 문 열쇠이길"이라는 글로 명명백백한 수사를 촉구했다.

연예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이승환은 자신의 소속사 건물 드림팩토리 외벽에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문구가 적힌 대형 현수막을 걸었다가 항의 신고를 받았다. 경찰 방문에 우선 현수막을 철거한 이승환은 지정 장소 외엔 자신의 건물이라도 옥외 현수막이 불법 광고물에 해당된다는 관련법을 확인하고선 해당 법에 저촉되지 않는 현수막으로 교체해 다시 내걸었으며, 지속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행보에 대해 비판을 쏟아냈다.

이승환은 상처받은 국민들을 위로하는 '길가에 버려지다'라는 제목의 곡을 이효리, 전인권 등 동료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해 음원을 무료로 배포하는 한편 앞서 언급했듯 서울시청 광장서 진행된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집회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이날 이승환은 미리 예정됐던 'After 빠데이' 공연이 종료된 직후 집회 현장으로 달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배우 정우성은 영국 런던서 열린 한국영화제 팬미팅에서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자신의 이름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있다고요? 제가요? 몰랐어요"라며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린 뒤 "하고 싶은 말 하면서 사는 게 제일 좋잖아요. 자유롭게 표현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죠. 이해충돌은 어느 시대에나 늘 있는데 그 시대의 기득권 세력이 무언가를 요구하고 그 요구의 강요에 저항하면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곤 하는데, 신경 쓰지 마세요. 그들이 만든 거지, 우리는 그냥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거니까.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는 소신 발언을 해 큰 화제가 됐다.

아이돌 2PM 멤버 황찬성은 "양파는 까면 깔수록 작아지는데 이건 뭐 까면 깔수록 스케일이 커지냐"며 "'이 난리통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다릴 거라는 걸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며 위정자들을 비판했다. 배우 신현준은 촛불 집회가 있던 지난 10월 29일 SNS에 태극기 앞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사진을 올려, 생방송 진행으로 현장에 참석하지 못한 안타까움을 전했다. 방송인 박명수는 KBS 쿨FM '박명수의 라디오쇼' 클로징 멘트로 "이런 시국일수록 우리 예능인들이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룹 '신화' 멤버 김동완은 민중총궐기 집회에 직접 나선 것은 물론, 현장을 SNS에 생중계하기도 했다.

대중음악평론가 서정민갑을 위시한 대중음악, 전통, 클래식 등 음악인 2,300여명은 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에 나섰다. 이는 지난 2009년 이명박 정권 규탄 시국선언 당시 700여명이 참여했던 것에 비해 약 3배 정도로 늘어난 수치이며, 음악인 시국선언으로는 최대 규모다.

이렇듯 연예인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생소한 현상이 보였다. 이들의 행보를 비판하는 목소리 대신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다.

사회참여를 하는 연예인들에 대한 시선은 최근 들어 그 날카로움이 조금은 무뎌진 모습이다.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 씨는 그야말로 '공공의 적'이 됐고, 파면 팔수록 더 많은 의혹이 제기되면서 여야 할 것 없이 현 상황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는 상황,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 역시 소셜테이너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조금이나마 와해시키는 데 한 몫했다. 암묵적으로 통용되던 '연예인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은 조금씩 변했고, 목소리를 높이는 연예인에 대해 '나댄다'던 시선은 '소신을 밝힌다'로 바뀌기 시작했다.

다만 이런 변화가 일시적인 현상은 아닐까 우려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상황이 상황인지라 소셜테이너들의 행보를 가시 돋친 눈으로 보던 이들도 여론에 따라 잠시 숨을 죽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 상황이 어떻게든 잦아들면 다시 연예계를 향해 '가만히 있으라'는 목소리가 나올 것이 분명하다. 당장 이승환은 최근 SNS에 "댓글 부대가 창궐했다"며 여전히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언급했다.

정치 성향을 떠나 연예인들의 목소리를 규제하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연예인은 세상 물정 모르는 '딴따라'이기 이전에 참정권을 갖고 표현의 자유를 지닌 '국민의 한 사람'이다. 정치적 중립 의무가 있는 공무원은 더더욱 아니다. 만일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이 '공인'을 정의하는 포괄적 기준이라면, '하는 일이나 잘할 것이지'라는 비판은 넣어두는 것이 좋다. 대중문화인인 연예인은 실력이 없어지는 순간 대중의 외면을 받고 영향력이 줄기 때문이다.

사회적 발언을 하는 연예인들에게 언론과 대중의 잣대는 더욱 엄격하다. 무비판적으로 사실 확인 없이 연예인들의 글을 전파하는 이들도 있지만 비판적인 시선으로 연예인들을 견제하는 이들이 더 많기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정치권이 개입하면서 정도가 매우 지나치고 방향도 엇나가긴 했지만, 김제동의 최근 '영창' 발언에 대해 사회가 관심을 갖고 반응한 것은 소셜테이너에 대한 비판적·견제적 시선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이런 견제가 소셜테이너들의 역할에 책임을 부여하고 더 건강한 사회 발전을 이끈다.

JTBC 손석희 앵커는 앞서 "상식적 판단에서 옳은 일이라면 바꾸지 말자. 내가 죽을 때까지 그 원칙에서 흔들리지 말고 나가자"고 말했다. 이승환은 "선한 영향력을 올바르게 행사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사회 참여 발언을 하는 연예인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말 대신 이들의 목소리가 더 건강하게 지속되도록 격려해야 하는 이유다.

정치인들의 막말과 무논리의 억지, 정치 농단을 넘어 국민을 농단한 사실에 대해선 어렵다면서 외면하고 연예인들에겐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면 우리는 정말 길가에 버려진 불쌍한 국민이 될 수밖에 없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수용하거나 거부할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다른 이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명령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침몰하는 사회 속에서 고분고분히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듣고 같이 침몰해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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