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의 세상이야기] 시안, 실크로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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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시안, 실크로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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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도라도, 샹그릴라, 실크로드 같은 이상향을 꿈꾸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언어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기회가 오면 서역의 끝을 보고 싶었다. 신라 고승의 자취가 유물로 남아있다는 모래언덕 명사산 끝자락 막고굴이 궁금했다. 손오공의 삼장법사 현장이 보았다는 화염산과 타클라마칸 사막의 끝없는 벌판,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천산산맥을 그려보았다. 실크로드의 출발지 시안(西安)은 사람들을 벅차게 만드는 곳이다.

상상의 영지에 두 발을 딛고 선 느낌이었다. 전쟁과 문명이 수없이 거쳐 간 땅, 현실과 이상의 접점에 남아있는 대지의 기운은 뜨거웠다. 신장 위구르 사막으로 이어지는 시가지 서쪽은 미세먼지에 쌓여 도시가 온통 잿빛이었다. 갑자기 불어 닥친 경제개발로 족보를 알 수 없는 고층 건물들이 진나라 군사처럼 곳곳에서 봉기하고 있었지만 고대의 위용을 덮지는 못했다. 서울의 15배나 되는 면적에 천 만 명이 살고 있다니 건설과 오염은 현실의 난제다.

2300년 전 서역으로 떠나던 대상(隊商)들의 출발지는 육중한 조형물이 대신하고 있었다. 붉은 사암으로 빚어진 작품이다. 모래 속에서 캐낸 돌의 형채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지층에서 수 만 년, 지상에서 수 천 년의 풍상을 견디어 온 견고함속에 먼 길을 떠난 이들의 다양한 표정은 시간에 조금씩 풍화되고 있었다.

배낭을 메고 낮 시간을 이곳에서 서성거렸다. 대륙을 가로질렀을 행렬들.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세상의 온갖 일들이 난무했을 텐데 모든 것이 세월에 가라앉아 고요한 침묵으로 남아있었다. 떠난 것은 돌아오고 멀어진 것은 가까워지고 높이 올라간 것은 다시 떨어지고야 마는 속세의 이치를 아는지 모르는지 사막을 향한 고대인들의 시선만이 비장했다. 햇살도 피할 겸 조각 그늘 아래 앉아 한숨 돌린 뒤 손때 묻은 책을 꺼내 들었다

▲시안에서 실크로드로 나가는 출발지.

송나라 때 돈황은 서하의 세력이 잡고 있었다. 11세기 초의 이야기다. 주인공(조행덕)은 천신만고 끝에 과거에 응시했으나 마지막 날 대기실 난간에 기대어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꿈속에 천자를 만나 진사 시험을 치르지만 깨어보니 시험장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석양으로 기우는 햇살 속에 가벼운 바람만이 마당을 지나가고 있을 뿐. 모든 기회를 놓쳐버린 이 사나이는 허무를 이기지 못해 돈황으로 떠난다 인간은 누구나 졸다가 놓쳐버린 과거의 꿈을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이노우에 야스시의 소설 '돈황')

천년동안 동굴 속에 묻혀있던 불경의 신비를 찾아 가는 한 남자. 현실도피의 명분은 그렇게 정했지만 명예나 부귀의 길을 버리고 서역으로 향하는 인생여정은 신비롭다 못해 경건하기까지 하다. 광대한 허무에서 맴돌다 가는 인간들의 행위는 모두 무의 세계임을 증명하는 듯 하다. 노벨 문학상 후보까지 올랐던 이노우에(1907-1991)는 '돈황'에서 아시아의 정신세계를 밀도 있게 담아내고 있다. 인간이 추구하는 격렬한 행위들이 빗나갔을 때 그들의 이상과 정의, 사랑이 완전히 정지된 상태에서의 행동을 관찰하고자 했다.

돈황은 서역(西域)이다. 기억에 묻혀버린 고대의 신화다. 동서 문명의 교착지에서 흉노와 서하, 위구르, 대월지, 티베트 같은 나라들이 명멸했던 곳이다. 인간의 길을 선택하는 조행덕은 바로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어떤 과정이든지 인생의 끝에는 반드시 허무와 공허가 남는다. 현대인이 추구하는 심미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내면에 흐르는 본질적 고독과 허망함이 제대로 잡히지 않으면 진실한 나는 없다. 불교적인 테마를 설정하고 전개하는 맛이 매우 깊다. 그의 소설은 오래전부터 나를 시안으로 유혹해왔다.

▲사막을 건너가는 낙타와 대상들의 표정이 살아있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했던 당시 장안(長安)은 사방 10킬로미터에 이르는 대도시였다. 100만의 인구. 세계 최대 중심지로 번성한 곳이다. 이 완벽한 계획도시를 본떠 경주와 일본의 교토가 지어졌다. 삼면이 산으로 들러 쌓인 관중분지(關中盆地) 중앙으로 취장(曲江)이 흐르는 천혜의 요충지다. 아직도 천재시인을 잊지 못하는 중국인들은 '곡강' 을 노래한 두보의 정취에 젖어 산다. 명나라 때 중건된 13킬로미터의 장안성곽은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남아있다.

시안 시가지는 회화나무 가로수가 울창했다. 아카시아 비슷한 수목이다. 딴딴면과 양코치를 파는 회족들도 실크로드 시절의 인연이다. 사막횡단 준비가 길어지면 해를 넘기면서 먹거리와 장비를 챙겼을 것이다. 사람과 재물이 몰리고 흥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진시황제 때부터 수나라, 당나라, 송나라, 명나라 등 13개의 왕조가 거쳐 간 3천년 동안 절반은 천하의 중심지였던 도시다.

신라 경주로부터는 시안까지는 2만 리 길이다. 두 달 만에 이곳에 당도한 혜초는 인도까지 돌아보고 '왕오천축국전' 을 남겼다. 1500년 전의 일이다. 시안에서 이스탄불까지는 다시 만7천 킬로미터다. 혈기왕성한 젊음도 5년을 준비하고 왕복 10년을 잡아야 하는 죽음의 코스다. 목숨을 건 대상들의 용기와 비전은 세월을 뛰어넘어 열정을 자극하는 지렛대다.

▲고대 장안의 중심지를 차지했던 대자은사 전경.

고대의 유산으로 잠자던 비단길은 독일의 리히트호펜(1833-1905)에 의해 알려졌다. 시안에서 허시후이랑, 타클라마칸 사막, 파미르, 중앙아시아초원, 이란 고원, 지중해 루트 8400킬로미터를 탐사한 뒤 '실크로드' 로 이름 붙였다. 진나라 사람들은 장안에서 돈황에 이르는 동실크로드 구간개척에 특별한 공을 들였다.

한무제는 대월지나 오손과 손잡고 북방의 흉노를 토벌하고자 했다. 장건은 이때 발탁된 장군이자 외교관이었다. 하지만 서아시아 루트를 확보하려던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그는 흉노의 장군 선우에게 포로로 붙잡혀 10년의 세월을 보낸다. 그 후 천신만고 끝에 다시 돌아온 장건이 원정해 서역은 마침내 복속되었다. 그렇게 살아남은 성읍은 그리스 아테네, 이탈리아 로마, 터키 이스탄불과 함께 세계 4대 고도(古都)로 문명의 줄기를 이어오고 있다.

당 고종이 어머니의 음덕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는 대자은사는 서역의 스토리가 좀 더 구체화되어 있었다. 현장(660년 수나라 낙양출신 승려)이 서역에서 가져온 불경원본이 귀한 볼거리였다. 장안을 출발한 현장은 실크로드를 거쳐 천축(인도) 마케타국 나란타사에 도착해 곳곳을 돌아보고 '대당서역기' 를 남겼다. 사찰 경내 대안탑에는 대당서역기의 해설 도해가 전시되고 있었다. 대안탑 꼭대기에 올라서니 당나라 수도의 위용이 한눈에 들어왔다.

시안은 이제 현대중국의 '일대일로(땅과 바다를 연결하는 현대판 실크로드)' 전진기지로 새로워지고 있다. 멀리 이베리아 반도 스페인까지 육로 연결이 추진되고 있다. 비단길을 복원시켜 중화문명의 전성기를 되살린다는 프로젝트다. 불교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이슬람교까지 비단길을 타고 들어와 아시아 문명을 꽃피웠다. 종교보다 강력한 경제를 무기로 중국은 지금 고대의 황금루트를 천천히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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