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의 세상이야기] 시바 료타로. 이런 국민작가를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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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시바 료타로. 이런 국민작가를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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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는 오사카 시내의 동쪽 끝을 향해서 달렸다. 나지막한 일본식 주택이 잘 정돈된 골목길을 두 어 번 돌아 일본의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司馬 遼太郞. 1924-1996)가 생전에 살던 집 앞에 내렸다. 서재에서 바라보며 즐겼다는 유채꽃은 없었다. 계절을 맞춰 가지 못한 탓이다. 대신 글을 쓸 때 덮었던 무릎 담요가 안락의자에 그대로 놓여있었다. 주인이 잠시 외출한 듯한 거실 분위기다. 지성미가 넘쳤던 앞가르마 흰머리의 생전 모습이 선하다. 유리문 너머 금방이라도 방 쪽에서 그가 걸어 나오며 미소를 던질 것 같다.

시바는 난세를 살았다. 온 몸으로 시대를 관통하며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역사적 질문을 무수하게 던졌다. 오사카 외대에서 몽골어를 전공하고 학도병으로 전쟁에 참가해 전차병으로 종전을 맞았다. 신문기자(신일본 신문, 산케이 신문)가 되어서는 기사보다 "일본과 일본인의 본질" 에 대한 깊은 탐구에 빠져 들었다. 역사를 해석하는 독보적 관점이 뼈대를 잡은 시기였다. 그 길을 위해 언론사를 그만두고 소설가를 택했다. '올빼미의 성' 으로 일본 문단 최고의 나오키상(1960)을 받아 자질을 선보인 뒤 곧 바로 대표작 '료마가 간다(1962-1966 신문연재)'로 전 일본을 뒤흔들었다.

사카모토 료마(1836-1867)는 메이지 시대 풍운아적 혁명가였다. 하지만 개화기 수 백 명의 청년지사 중 한사람으로 당시에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시바의 소설을 통해 100년 만에 완벽하게 부활했다. 메이지 유신이라는 세계사적 사건을 만들어낸 전략가, 잊혀 진 영웅 료마가 한 소설가의 손끝에서 위대한 영웅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국민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 일본인들의 애정은 '시바 료타로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로마인 이야기)와 미야자키 하야오(애니메이션 거장)등이 이 상의 역대 수상자다.

▲시바 료타로.▲시바 료타로의 대작 료마가 간다 10권.

             ▲시바 료타로.                                             ▲시바 료타로의 대작 료마가 간다 10권.

시바는 단순한 전기를 쓰지 않고 료마를 통해 열강으로 도약하는 근대일본의 태동을 그려내고자 했다. 료마 일대기를 구했던 날 단숨에 3권까지 읽으면서 흥분했던 기억이 새롭다. NHK는 시바의 소설을 각색한 48편의 대하드라마(2010년)로 일본열도를 달궜다. 패기를 잃어버린 전후세대들에게 미래의 좌표를 설정해주고자 했다. 주인공 료마역을 맡았던 후쿠야마 마사하루는 국민스타 반열에 올랐고 촬영지는 순식간에 모두 유명관광지로 바뀌었다. 료마의 고향 시코쿠(四國)는 방문객들로 넘쳐났다.

메이지 시대를 조명하는 시바의 작업은 멈추지 않았다. 당시 정치가 에토 신페이의 비극적 일대기를 그린 '세월'과 오무라 마쓰지로의 생애를 추적한 '화신',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아키아마 형제의 헌신적 조국애를 묘사한 '언덕위의 구름' 등은 불멸의 역작이다. '료마가 간다(8권)', '언덕위의 구름(10권)' 은 3천5백 만 질이 팔렸다. 낱권으로 3억3천만권이다. 상상을 넘어서는 역사소설 시대가 한 작가로부터 열렸다.

시바가 생전에 들꽃들을 심어놓고 즐겼던 앞마당에는 기념관이 들어서 있었다.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기하학적 건축물은 달팽이관처럼 곡선으로 입구와 출구를 연결시켜 놓았다. 지하 2층부터 지상 3층까지 하나로 연결된 거대한 벽면에는 4만권의 책들이 꽂혀 있었다. 어떤 소설이든지 집필 시작 전에 반드시 트럭 1대분의 자료와 책들을 모았다니 고증과 현장답사에 충실했던 대가의 손길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현장이다. 남겨진 육성은 화면과 함께 반복적으로 방문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시바료타로 기념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시바료타로 기념관.

사마천은 한나라 때 전쟁에 나가 패한 장수를 두둔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 생식기가 잘리는 궁형을 당하고도 살아남은 역사가다. 세계사는 로마의 헤로도토스나 투키티데스를 최고로 꼽지만 아시아에서는 단연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이다. 2천년동안 변함없이 존경받는 사마천은 바로 시바가 가고자 했던 인생 목표였다. 본명(후쿠다 데이이치)을 버리고 시바(사마) 료타로로 이름까지 바꾸면서 완벽한 역사가를 꿈꿨다

시바는 유작 "21세기 청년들에게"를 통해 "당신들이 걷고 있는 21세기는 어떤 시대인가"를 묻고 있다. 미래 일본이 갖춰야할 모습, 지향해야 될 방향을 질문하고 있다. 생전에 남긴 120여 편의 저작에서 한결같이 강조했던 역사인식을 미래세대에게 물으면서 생을 마감했다. 메이지를 거쳐 열강을 경험한 일본은 시바의 사상을 통해 그들의 세계사적 위치와 관점을 다시 돌아보고 있다.

시바 료타로에 견줄만한 한국의 대가는 신봉승 선생(1933-2016)이다. 그는 작고 전 마지막 인터뷰를 통해 "일본에 시바 같은 소설가가 있다는 것은 하늘의 보살핌이다" 고 고백했다. 신봉승은 '조선왕조 오백년' 48편을 소설로 남겼다. "역사는 문자로 읽는 게 아니고 관점으로 읽는다" 는 그의 시각은 문화계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왔다. 오늘날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역사재조명을 예견했던 혜안이었다. 우리는 과연 한국역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 위대한 인물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관점으로 바라보는 역사시대의 날들을 그리며 시바의 집을 돌아 나왔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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