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건설사 '짬짜미' 사후 처벌보다 예방약이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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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건설사 '짬짜미' 사후 처벌보다 예방약이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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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김수정 기자] 잊을만하면 들려오는 게 건설회사 담합 소식이다.

H건설사는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지난달 31일 패소했다. 부산지하철 1호선 연장 공사 입찰에서 D건설사와 사전모의한 죄로 지난 2014년 과징금 48억3000만원을 부과 받은 게 부당하다는 취지로 낸 소송이었다.

지난 5월에는 H건설사와 H중공업, D중공업, K건설 등 관계자들이 줄줄이 기소됐다. 2018 평창올림픽 지원 철도인 '원주-강릉' 철도건설 입찰 담합에 가담한 혐의다. 이들은 짬짜미하고 5800억원짜리 사업 4개 공구를 나눠 먹었다.

한국가스공사가 2005~2012년 발주한 액화천연가스(LNG) 저장탱크 건설공사 입찰에서 담합한 13개 건설사는 지난 4월 과징금 3516억원을 부과 받았다.

호남고속철도 담합 사건에는 무려 28개사가 연루됐다. 부과된 과징금 액수는 4355억원에 달한다. 2014년 적발된 이 사건은 최근 3년래 가장 광범위한 담합사건으로 꼽힌다.

건설업계가 담합과 작별하는 일은 지금으로서 요원해 보인다.

공정위는 최근 3년간 100여건의 대기업 건설사 불법 공동행위를 잡아냈다. 이에 부과한 과징금은 1조원을 훌쩍 넘어선다.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담합은 대형 건설사들의 '살 길'이다.

대형사들은 '공종들기' '부적정 공종' 등 기발한 아이디어로 중·소형 회사들을 경쟁에서 밀어내고는 높은 가격으로 사업을 수주한다. 적발돼 과징금을 물어도 그 때뿐이다.

도처에서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지적이 제기된다.

담합으로 수천억원 규모 공사를 수주한 게 적발돼도 과징금은 계약금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건설사 입장에선 들키지 않으면 큰 이익을 볼 수 있고 적발되더라도 별 손해가 아니다.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은 3년간 과징금을 3회 부과 받은 건설사 등록을 말소하도록 규정한다. 공정위 적발-처벌 과정에는 통상 2년 이상 소요되므로 등록 말소 가능성은 매우 작다.

그래서 처벌 수위를 강화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이와 맥락을 같이하는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지난 7월2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정종섭 의원(새누리당)이 대표 발의했다. '3진 아웃제' 기간 제한을 없앤다는 등의 내용이 골자다.

실효성 있는 제재로 업계를 선도하자는 취지는 옳지만 어딘가 답답하다. 불공정 행위 예방을 위한 장치는 미약한데 비해 사후 처벌만 강화되는 양상이다.

담합은 시장경제체제 기본 원리인 기업간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막는 악질적인 행위다. 경제활동의 기본 질서를 흔드는 병폐라고 할 만하다. 담합의 여파에 비하면 우리의 제재가 약한 수준인 건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산업계에서 급격히 제재 수위를 높이는 건 해당 업계 숨통을 죄는 결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당국은 불법행위에 대한 사후 징계보단 사전 예방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작년 초 '건설산업 입찰담합 예방 및 시장 불확실성 해소방안'을 공표했다. 예방안은 공공공사에서 '1사1공구제'를 폐지하고 '최저가 낙찰제'를 '종합심사 낙찰제'로 바꾼다는 등의 내용을 포함했다.

2014년 무더기 대형 담합사건 이후 과징금 폭탄 등으로 위축된 건설업계를 되살린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대책이었다. 사후 처벌이 능사가 아님을 정부도 모르지 않는다.

최근 대한건설협회를 중심으로 건설업계도 자정에 성의를 보이고 있다. 고무적인 일이다. 관계 부처의 선도와 업계의 자발적 노력이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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