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동전 없는 사회? 물가·보안우려 해소가 먼저
상태바
[기자수첩] 동전 없는 사회? 물가·보안우려 해소가 먼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컨슈머타임스 조선혜 기자] 전통시장을 자주 이용한다. 주로 현금을 쓴다.

콩나물 1000원 어치로 카드를 긁기엔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덕분에 짤랑거리는 동전도 제법 가지고 있다. 잘 사용하진 않는다. 고스란히 돼지 저금통에 들어간다.

이런 이가 한둘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돼지 뱃속에 들어간 동전이 유통되지 않으니 제조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며 한국은행이 급 처방을 내렸다. 오는 2020년까지 동전 없는 사회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땐 내심 좋았다. 무겁고 귀찮은 동전이 사라진다면 편할 것 같았다. 시장 외 편의점이나 마트, 백화점 등에선 카드를 더 많이 쓰기 때문에 시대의 흐름에도 맞는 것 같았다. 실제 상황을 머릿속에 시뮬레이션 해보기 전까진 말이다.

900원어치 물건을 사고 1000원짜리 지폐로 계산한다고 생각해보자. 한은에서 말하는 동전 없는 사회가 구현될 경우 100원을 동전이 아닌 충전식 선불카드나 이른바 '동전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지급수단을 마련해놓지 않은 영세상인 등은 아예 물건값을 1000원으로 올릴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결국 전체 물가가 인상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솔솔 나온다.

'동전 없는 사회 = 물가 상승' 소비자들 사이에선 이 공식이 성립되는 셈이다.

한국은행이 진화에 나섰다. 라디오 인터뷰 등을 통해 이 같은 걱정은 '기우'라고 설명했다. 잔돈을 충전식으로 받기 때문에 실제 제 값을 다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상점 간 경쟁으로 가격 안정이 나타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이를 듣고 있자니 문득 떠오른 생각. 애초에 동전 대신 카드나 앱으로 잔돈을 돌려줄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 놓은 상점이라면 소비자가 카드나 스마트폰으로 결제하려 하지 않을까?

'동전 없는 사회 = 현금 없는 사회' 한은 측이 이 같은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현금 없는 사회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돈의 흐름이 전산에 명확히 기록되기 때문에 세수 확보에 유리하다. 지하경제 양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부정청탁·로비 등 사회 부조리가 개선될 여지도 있다.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전자결제가 보편화된 스웨덴에서는 지난 10년 간 카드 사기가 2배로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추적이 어려운 현금이 있을 땐 범죄의 표적이 현금이었겠지만 이 타깃이 은행 사이트 등으로 넘어오면서 이 같은 결과가 나타났을 것이다.

5만원권 등 현금의 유통이 여전히 활발한 한국에서도 보이스피싱 등 범죄가 활개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걱정할만한 일이다.

개인이 돈을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기록이 모조리 남는다는 것도 찜찜한 구석이다. 해당 자료가 유출될 경우 소비자의 정신적·금전적 피해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한국은행과 이를 따르게 될 각 은행·카드사들, 개개 상점들이 이 걱정들을 어떻게 해소시켜줄 지가 관건이다.

삼성페이가 등장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빠르게 안착하고 있지만 현재 인터넷뱅킹 수준만큼 대중화되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한은이 애쓰지 않아도 2020년 즈음에는 전통시장에서도 모바일로 결제하는 풍경이 익숙해질지도 모른다.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카드나 앱을 사용하고, 또 금융사가 정보유출 등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지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동전 바꾸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는 것도 단기적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살인적인 장바구니 물가에 고통 받고 있는 소비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현실적인 정책을 기대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투데이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