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SC제일은행, 문제는 '간판' 아니라 '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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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SC제일은행, 문제는 '간판' 아니라 '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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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조선혜 기자] 응팔(드라마 '응답하라 1988') 덕선이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데에는 '과거로의 회귀'를 갈망하는 기성세대들의 관심이 크게 작용했다.

개인들만 그런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최근 한국SC은행은 'SC제일은행'으로 사명을 바꿨다. 과거에 일궜던 1등 은행의 영예를 회복하고 '한국 최고의 국제적 은행'으로 도약하기 위함이라고, 은행 측은 장황한 설명을 곁들였다.

갑갑할 것이다.

한국SC은행은 지난해 2857억51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전년 753억4800만원 손실에 이어 2년 연속 적자를 냈다. 물론 지난해의 경우 일회성인 특별퇴직비용 4943억원이 발생했지만 이를 제외한다 해도 큰 이익이 난 건 아니었다.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주문하고 있는 배당은 꿈도 못 꿨다.

당기순이익이 2257억원으로 전년대비 2배나 늘어난 한국씨티은행은 1162억원을 배당했다. 신한·KB금융 등도 6310억원, 3786억원 등으로 배당을 역대 최대 수준으로 늘렸다.

한국SC은행이 올해 은행권 배당 트렌드에 한참 뒤떨어진 셈이다.

실적이 발표되기도 전에 한국기업평가는 한국SC은행의 신용등급을 기존 'AAA'에서 'AA+'로 강등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이 은행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했다.

악화된 분위기를 반전시킬 요량으로 한국SC은행은 비교적 빠르고, 간편한 방법인 '간판 바꿔 달기' 전략을 취했다.

제일은행 시절부터 거래해온 전통 소비자들과 글로벌 은행인 'SC' 명칭에 익숙한 젊은층, 그리고 일반인 모두 잡겠다는 강력한 포부를 드러냈다. 간판 하나 바꾸면서 말이다.

한국SC은행의 이번 실적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 '한국 철수'를 위한 물밑작업으로, 고의적으로 손실을 '조성'한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사명 변경을 두고도 비슷한 말들이 오갔다. 어딘가에 매각했을 때 OO제일은행으로 은행 이름을 바꾸는 편이 수월하니 이처럼 조정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의혹들이 묘한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에 근거가 전혀 없진 않았다.

실제 한국SC은행은 지난해 961명의 직원들을 특별퇴직으로 내보냈다. 한국 철수설이 더욱 힘을 얻었다.

영국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은 작년 전체 세전손실액 15억 달러를 기록했다. 1989년 이후 26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순손실을 낸 것이다. 수익이 나지 않는 손자회사 한국SC은행을 매각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증폭되는 배경이 됐다.

'엄지척' 로고로 우리에게 친숙했던 '제일' 은행이 왜 이렇게까지 됐을까.

한국SC은행 거래 소비자들은 적은 점포 수를 가장 큰 불만으로 꼽고 있다. 하지만 같은 외국계은행인 한국씨티은행도 지점 수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 이 부분이 '당락'을 좌우했다 보기 어렵다.

사실 씨티의 경우 '국제현금카드'로 소비자들의 관심을 모았었다.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 등으로 비교적 장기간 해외에 나가야 할 때 가장 먼저 만들어야 하는 통장·카드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현지에서 수수료 절감 혜택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독보적이었다.

한국SC은행은 기존 시중은행들처럼 안정적인 이미지를 유지하지도 못했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한 강점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오히려 '대출 받아보니 이자가 비싸더라'라는 인식만 남겼다. 해외 은행들은 주로 담보가 아닌 상환능력 위주로 대출을 집행하는데, 이를 한국의 상황에 맞지 않게 시대에 앞서(?) 우겨 넣은 결과다.

소비자 스킨십을 늘리기 위해 '찾아가는 뱅킹' 서비스에 남은 힘을 쏟아 붓는 모양새다. 그러나 '위비뱅크'·'써니뱅크' 등 집에서도 통장개설이 가능한 서비스들이 속속 자리잡고 있어, 이마저도 제대로 운영될진 미지수다.

심심찮게, 그것도 모 지방금융지주가 인수에 관심을 보였다는 상당히 구체적인 루머가 돌 만큼 소비자들 사이에선 SC은행 매각이 중요한 이슈였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아니다'라는 말로는 이미 부족해 보인다. '내 돈을 안전하게 맡길 수 있다'는 소비자들의 믿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더 적극적으로 내실 키우기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껍데기'만 수 차례 갈아 끼워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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