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의 세상이야기] 도쿄 올림픽, 56년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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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도쿄 올림픽, 56년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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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도쿄 올림픽은 가난과 치욕을 딛고 경제기적을 만들어온 일본인의 자존심을 세우는 기회였다. 그들은 더 이상 패전국이 아니라 존중받을만한 나라의 대열에 서서 그 사실을 꼭 확인하고 싶었다. 그해 도쿄와 오사카를 잇는 신칸센이 개통되었고 현대식 스타디움, 고급호텔, 잘 정돈된 지하철 등이 국제사회에 선보였다.

시대의 아이콘 단게겐조(丹下健三)의 건축 디자인은 큰 자랑거리였다. 거대한 주경기장에서 전범으로 각인된 히로히토는 94개국 대표단이 입장하고 8천 마리의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상공을 감격스럽게 바라보았다. 이날은 누구도 일본이 1933년 국제연맹을 탈퇴하고 히틀러, 무솔리니 편에 서서 1940년 2차 대전을 주도한 국가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조선과 만주, 오키나와, 진주만, 마닐라의 죄악을 모두 망각한 채 기쁨에 들떠 평화를 부르짖는 신흥강국으로 포장되는 순간이었다.

아시아 최초의 올림픽 개최였기 때문에 흥분은 당연한 일이었다. 성화의 최종주자는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떨어지던 날 현지에서 태어난 사카이 요시노리로 결정되었다. 용서받지 못할 전범국가에서 평화국가로 탈바꿈하기 위한 준비였다. 유도, 배구가 최초의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아베베는 올림픽 마라톤 2연패를 달성했다. 북한 신금단 선수는 남한의 아버지(신문준)를 만나 눈물바다를 이뤘다. 일본은 뜨고 한국은 냉전의 희생물로 남았다.

16개 메달로 개최국은 냉전의 두 축인 미국 소련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나라 전체가 메달에 지독한 집착을 보였다. 일본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마라톤(스부야 고치키)과 여자 허들(요다 이쿠오) 선수는 올림픽 직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스부야는 마지막 결승지점에서 흥분한 일본 관중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영국선수에게 추월당해 3위로 들어오는 치욕을 경험해야 했다.

유도에서는 이변이 없는 한 일본의 국민스타 가미나가 아키오(神 永昭夫)가 금메달 주인공이 될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경기도 올림픽 마지막 날로 잡았다. 그 시합을 보려고 1만7천명이 운집했다. 전국 각지의 TV앞에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시작은 비슷한 듯 했지만 경기는 네덜란드의 안톤 기싱크가 왜소한 아키오를 찍어 누르면서 싱겁게 끝났다. 일본 챔피언은 바닥에 깔려 버둥댔으나 끝내 빠져나오지 못하고 완패 당했다.

정적이 흐르던 경기장은 비탄에 빠졌다. 기싱크의 승리를 받아들일 수 없는 분위기였다. 아쉬움과 실망이 거칠게 교차했다. 일본이라는 우월한 국가가 세계를 향해 전쟁을 벌였고 강하다고 자부했지만 패배했듯이 금발의 서양거인 앞에 또 한 번 힘의 한계를 통감해야 했던 날이었다. 네덜란드 응원단은 관중석에서 내려가 국기를 흔들며 축하를 준비했다. 기싱크는 손을 들어 축하를 말리며 비통의 눈물을 흘리고 있던 아키오에게 다가가 정중한 목례를 했다. 그 순간 일본 관중들은 환호했다. 아름다운 패배를 만들어준데 대한 박수였다. 기싱크는 올림픽 최고의 영웅이 되었다. 일본인들은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한다.

▲ 1964. 도쿄올림픽이 열린 가스미가오카 경기장

과신, 광신, 열등감, 집착, 그리고 항복의 쓰라린 경험은 패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일본인들의 트라우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치욕이었지만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맥아더 군정을 거쳐 한국전쟁으로 다시 일어선 열도는 이제 자기들만의 행보를 거쳐 21세기 강대국의 길을 지향하고 있다. 가급적이면 저 밑바닥의 깊은 상처를 건드려 주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패전을 딛고 일어선 '1964 올림픽', 그 환희의 전당은 이미 철거되었다. 도쿄 신주쿠 가스미가오카 스타디움은 지상에서 사라졌다. 그 자리에 신국립경기장을 짓기로 한 것이다. 과거의 올림픽 주경기장은 추억이 되었다. 모시 요시로(전 수상) 2020 도쿄올림픽 조직위원장은 2조3천억원을 투자해 새 경기장을 짓겠다고 밝혔다. 이스탄불을 제치고 도쿄유치를 성공시킨 아베 수상과 술잔을 부딪치며 수없는 감사를 전했다.

56년 만에 일본은 역사상 두 번째 올림픽을 준비중이다. 현장은 공사로 분주했다. 차가운 날씨인데도 중장비와 인력이 대거 동원되어 활기가 넘쳤다. 주변 체육공원은 배드민턴을 치거나 자전거를 타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테니스장과 야구장을 돌아서 바로 오른쪽은 쇼토쿠(聖德) 미술관이었다. 천왕 메이지(明治)의 업적을 88점의 그림으로 표현해 간직한 시설이다. 무스히토(메이지 천왕)는 일본의 근대를 일으킨 국부로 추앙받고 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승리, 근대헌법 제정, 해군력 증강으로 이어지는 재임 45년은 일본의 국운이 최고조에 달하던 시기였다.

▲ 2020. 도쿄올림픽 신경기장이 지어지는 체육공원

메이지 시대의 근대 일본은 서양제국이 되기를 원했고 유럽국가들 따라 하기에 전력을 기울였다. 유신이후 개국과 근대화에 성공한 것은 일본의 독창적인 설계라기보다는 당시의 선진국을 추종한 것이 주효했다. 역사는 얄밉도록 반복된다. 지금 동북아시아 정세는 1900년대 초와 놀랍도록 닮아있다. 미국과 손잡고 보통국가를 부르짖으며 헌법개정을 밀어붙이는 아베가 그렇고 중국의 상승과 한국의 고민이 그렇다.

다가오는 도쿄 올림픽은 축하해줄 일이다. 일본 지식층은 2020년을 그들의 진정한 미래국가 재탄생 시점으로 삼고 싶다고 말한다. 주변과의 과거문제가 더 이상 미래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도 확산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의 선택은 이제 그만 피해자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우리가 오랫동안 갇혀있던 상처의 동굴에서 걸어 나와 대등한 위치에서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은 이웃들이 자기네를 인정해주기를 바란다. 노력한 만큼 성의에 대한 평가를 해달라는 것이다. 과거 역사를 접어놓고 자기식대로만 주장하는 그들이 한없이 야속하지만 먼저 숙이면 더 위대해지는 진리를 깨닫기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1964년 올림픽이 끝나고 일본은 선수들의 육체적 자살을 목격해야 했다. 2020년 올림픽에 국민들의 정신적 자살을 목격하지 않도록 성숙한 국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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