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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월정사 선재길, 또 하나의 시간

김경한 justin747@cstimes.com 기사 출고: 2016년 02월 16일 오후 3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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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길을 알면 앞으로 갈 길을 안다는데 아직도 어떤 길이 최선인지 모른 채 여기까지 흘러왔다.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는 죽는 날까지 풀지 못하는 숙제다. 질문은 항상 모래폭풍이 되어 언제부턴가 내안에서 사납게 솟아오르곤 한다. 그 바람이 일면 일단 떠나야 한다. 고요함과 사색으로 허기를 달래야 한다. 겨울산을 가보겠다고 벼르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강원도로 발길을 옮겼다.

눈 내리는 월정사 숲길은 고요했다. 오대산을 품은 넉넉한 계곡은 정적마저 감돌았다. 물소리는 얼음속에서 차갑게 숨을 죽이고 있었다. 불어오는 삭풍에 이리저리 흩날리는 눈보라가 인간사의 춤추는 나비 떼 같다. 1700그루 전나무 군락에서 쏟아져 나오는 산소는 아직 접해보지 못한 신선함이었다. 길은 수평이었고 나무는 수직이었다. 하늘과 땅의 엇갈린 조화 속에 원시의 자연은 시간의 역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는 숲속으로 점점 더 깊게 내 몸을 숨겼다.

생명은 스러진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히 살수 없기에 인간 세상에 사랑이라는 마취제가 만들어졌고 나약하기에 용기라는 지혜를 선물 받았다”(호메로스 ‘일리아드’) 유복한 왕자의 길을 버리고 길에서 깨달음을 얻은 고타마 싯달타가 밟고 간 길은 2500년을 건너왔다. 열반의 길을 얻지 못한 인간의 윤회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죽음이라는 명제에 가까워져서야 비로소 위대한 생각에 도달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신의 설계일 것이다.

고요 속에 영원히 스러지는 것은 죽음이다. 그 영겁이 있는 곳. 적멸보궁(寂滅寶宮)이다. 월정사에서 3시간을 올라 상원사를 지나고 마지막 등성이 선재길 끝 깔딱고개를 넘어야 만날 수 있다. 부처의 진신 사리가 모셔져 있다고 믿는 곳이다. 자장율사가 이곳에 터를 닦은 불당(643년.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은 1500년을 견디어 왔다 선재는 깨달음을 향해 가는 지혜와 구도의 상징으로 화엄경에 나오는 동자 이름이다. 허공을 삼킨 선지자 탄허(呑虛)와 현해(玄海)스님이 득도한 곳이다. 한국전쟁으로 붙타버린 폐허를 골라내고 다시 불가의 자비를 세워 올렸다.


▲ 오대산 상원사 선재길 끝 눈 덮힌 적멸보궁

▲ 오대산 상원사 선재길 끝 눈 덮힌 적멸보궁

숲은 상념을 풀어 헤치는 곳이다. 파랑새를 찾으러 멀리 떠났던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다시 돌아온 자신의 집 같다. 누구나 행복을 잊어버렸다면 메테르링크(벨기에 작가)의 ‘파랑새’ 주인공이 되어 자신을 찾고 실컷 충전하기 좋은 곳이다. 마음에 달을 담아가면 성공이다. 올라갈 때 없었던 미소가 하산 길에 입가에 번진다면 그만이다. 발아래로는 우통수(于筒水)에서 흘러내린 물길이 평행을 이룬다. 정선, 영월, 양수리를 거쳐 한강을 이루는 줄기다.

석등에 촛불이 켜지면 스님의 발걸음은 합장으로 잦아든다. 상원사 대웅전 앞마당에는 두 손을 모으고 탑을 도는 이들의 간절한 무념이 서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눈내리는 오후 절간을 서성거렸다. 맑고 향기로운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에 고개를 끄덕였다. 현생에서 다시는 볼 수 없는 인연들을 독경소리에 흘려보내면서 마침내는 석등을 덮고야 마는 눈송이를 바라보았다.

월정사에서 상원사는 20리 길이다. 인간의 길에서 시작해 하늘의 길로 통한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법정은 생전에 이곳에 들러 ‘숫파니파타’ 의 법구경을 수도 없이 암송했다고 한다. 자비, 고요, 동정, 해탈, 기쁨을 적당한때에 익히고 세상을 저버림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일 것이다 탐욕, 혐오, 어리석음, 속박을 끓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굳세게 가라는 말일 것이다.

의연함. 묵묵함. 단단함. 그러나 그 모두가 집착이다. 혼자서 가겠다는 것 또한 소유 아닌가. 늘 사념으로 고통스러운 육신을 천년 숲은 모두 내려놓으라 한다. 그러나 내려놓을 수 없는 집착이 나의 몸통을 틀어쥐고 있기에 더 간절한 바람일 것이다. 내리막길, 갈수록 울창해지는 거제수나무 아래로 사멸한 전나무의 시체들이 누워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속이 텅 비어있다. 오래된 나무는 자기가 스스로 자기의 속을 모두 비워내는 모양이다. 버려진 나무속에 깨달음이 포개져 있다.


▲ 상원사에서 적멸보궁으로 이어지는 사자암 계단

▲ 상원사에서 적멸보궁으로 이어지는 사자암 계단

“도(道)를 들어도 믿지 못하고 도를 믿는다고 해도 돈독하지 못합니다. 구슬을 갖고도 구슬을 잃어버리고, 나귀를 타고서도 나귀를 찾는 허물이 있습니다. 또한 쇠(鐵)를 은(銀)으로 부르고 벽돌을 갈아 거울로 만들려는 병폐마저 들었습니다.” 알쏭달쏭한 오도송이다. 1.4 후퇴 때 부상으로 이곳에 쳐진 시인 박용열의 자취는 아직도 현무암 시비(詩碑)에 온전히 담겨 있었다. ‘오대산 가는 길’은 월정사의 깨달음이다.

“찬바람 불고 서리 오기 전에 어디로 갈까.

걸망 메고 망설이다가 홀로 눈감으니

바로 이 자리가 그 자리인 것을

내 어찌하여 그렇게도 몰랐을까”

눈 뒤집어 쓴 전나무 선재길. 부처를 만나러 온 인간들 틈에 끼어 절집 마당을 몇 바퀴 돌다가 정처 없이 하산했다. 인간들의 때가 묻어 오히려 더 인간적인 절집에 내 발자국도 남기고 왔다. 구도와 침묵은 궤도를 이탈한 영혼을 붙잡아 잊고 지나온 곳으로 다시 나를 데려다 줄 것으로 믿으면서 말이다. 싸락눈이 쉼 없이 얼굴을 때렸다. 숲은 점차 고요 속으로 사위어 가고 내 가냘픈 발걸음 소리만이 바람처럼 남겨졌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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