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의 세상이야기] 히말라야에서 만나는 다르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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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히말라야에서 만나는 다르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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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가까운 봉우리 하나도 간단한 거리가 아니었다. 8천 미터를 넘나드는 고봉들은 모두 동화처럼 잔잔한 모습으로 서있지만 인간의 손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늘길(天路)이라고 했던가. 4천 미터에서 올려다보는 탐세르쿠(thamserku. 6608미터) 설산의 흰 그림자는 서쪽으로 숨이 다한 태양을 힘겹게 붙잡고 있었다. 손에 잡힐 듯한 세계가 이렇게 멀리 있는 것도 모르고 지금껏 살아왔다. 운명을 원망하고 나의 카르마에 한계를 지우며 그 안에 갇혀 지내왔다.

"히말라야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은 죽음과 탄생사이의 과도기적 시간을 '다르마타(Dharmata)' 라고 불렀다. 그것은 이승도 저승도 아닌 잠과 꿈 사이의 밝은 틈새라고 했다. 목숨 값에 억눌려 온갖 욕망으로 이지러져 있던 이른바 불멸의 본성이, 하나가 통째로 끝나고 다른 하나가 통째로 시작되는 그 틈새에서 다이아몬드보다 견고한 제 본체를 보이고 보여주는, 은혜와 축복의 시간이 바로 다르마타였다". (박범신. '촐라체')

문명은 페르소나를 강요한다. 가면 뒤에 숨어서 수많은 업보를 쌓고 허문다. 로마시대부터 인간은 욕망을 감추는 페르소나를 사용해왔다. 우리는 모두 가면 뒤에 숨어있다. 가끔 이렇게 원시의 세계로 끌려 나오면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벗고 자신을 직시하게 된다. 초월적인 자연 앞에서는 인간의 가장 순수함만이 남을 수밖에 없다. 티벳사자의 서에 기록된 다르마타는 세르파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한다. 문명에서는 볼 수 없는 인간의 정수, 그 본체를 보기위해 이곳을 찾고 싶었다.

남체에서 타메(Thame. 3920미터)로 가는 고갯길은 힘겨웠다. 여기를 넘어 이틀을 더 가면 티벳이다. 숲을 지나자 지진으로 무너진 산허리가 절벽 아래로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었다. 네팔 지진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남아있었다. 며칠 째 시큰거리는 무릎 때문에 말을 탔다. 그런데 좁은 산길의 절벽 쪽으로만 골라서 내딛는 구라니(쿰부산 5살짜리 말)의 심술은 나를 패닉으로 몰아갔다. 차라리 눈을 감았다. 역시 두려움은 나를 가두는 공간이었다. 고삐를 잡고 앞서가는 세르파 닝마의 얼굴처럼 평온을 찾는 것은 공포를 내안에 잠재워야 가능한 일이었다.

▲ 남체 바자르에서 타메로 향하는 고도.

모든 두려움은 나를 가두고 초월은 나를 자유롭게 한다. 초월적 희망은 정말 좋은 친구다. 좋은 것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진정한 자유는 끝을 알 수 없는 미지의 땅으로 긴 여정을 떠나는 것이다. 그렇게 자유인이 되어보는 것이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는 동안 구라니는 타메 입구로 나를 데려가고 있었다. 목마름과 기다림의 인생에서 완전히 낯선 곳을 만나는 일, 그렇게 해서라도 온갖 업으로 얼룩지고 피폐해진 육신을 세탁하는 일이 뜻대로만 된다면 나는 히말라야의 사그라마타 여신을 만난 것이다. 그 모든 카르마를 쓸어내는 커다란 빗자루를 찾은 것이다.

타메에서 달밧(메밀스프와 밥) 한 그릇을 비우고 다시 길을 서둘렀다. 헤드램프까지 준비했지만 날이 저물기 전에 롯지를 찾아야 안전하다. 길을 재촉하다가 영국에서 온 70대 노부부를 만났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두 사람만의 여행지로 에베레스트를 선택했다니 예사롭지가 않다. 동행은 서로 자신에게 끓임 없이 질문을 던지며 삶의 의미와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같이 걸으면서도 서로는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그것을 인식하면 할수록 결코 잘 알지 못하는 수수께끼다. 그래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서로에게 이방인으로 머문다. 주름진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는 노부인의 미소는 동행의 진정한 의미를 미뤄 짐작케 했다.

"쩌기 ---다 왔숨니다". 벌써 닷새 동안 동고동락해온 펨바는 헉헉거리는 나에게 "쪼끔만 더 가면 누워서 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게 된담니다" 며 코믹한 한국말로 에너지를 넣어주고 있다. 보이는 계곡 하나를 넘는데 서너 시간이 걸리는 무념의 세계다. 욕망과 계산으로 답을 찾을 수 없는 땅이 바로 히말라야다. 그래 이것이 인생이다. 멈추고, 눈을 감고, 구도하고, 한없이 초라한 자신을 진정으로 돌아보면서 나는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남을 경험하리라.

카일라스의 성자 밀라레파는 "네 몸이 신들로 가득 찬 너의 사원" 이라고 가르쳤다. 과연 그랬다. 초르텐도 사원도 필요 없고 복잡한 철학도 필요 없었다. 나 자신의 머리와 나 자신의 가슴이 바로 사원이다. 몸은 정말 의미 없는 껍데기다. 그들이 '뤼' 라고 표현하는 몸은 영혼을 잠시 보관해두는 창고다. 진정한 자유는 영혼이 '뤼' 를 탈출하는 순간부터다. 감옥 같은 '뤼' 에서 자유롭게 되는 날을 고대하고 살아간다고나 할까. 땀으로 범벅이 된 초라한 내 육체가 나의 사원이었다. 나의 신성한 영혼이 기거하는 곳.

▲ 해발 4천미터 헬리포트에서 탑승준비.

해발 5천 미터를 앞에 두고 지친 몸은 더 이상의 전진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정상을 보고 싶었다. 아마추어로서는 오를 수 없는 설원의 끝을 보고 싶었다. 약속된 헬기는 루크라 공항에서 출발해 깊은 계곡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날아왔다. 예정보다 2시간이나 늦었지만 너무나 반가웠다. 기장과 눈을 마주치며 상공으로 솟아올라 8천 미터를 넘는 6개 봉우리를 돌았다. 무너져 내린 빙하와 만년설이 이뤄낸 호수를 넘고 수직으로 조각된 듯한 사면을 돌았다. 언어가 필요 없는 광대한 자연 앞에 숨이 막혔다.

이 길을 통해 정상에 올랐던 수많은 산사람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지난 40년 동안 3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겉으로는 위험을 알 수 없는 숨겨진 함정 크레바스에 빠지거나 하산 길 추락사가 원인이었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대지의 끝, 이 허공에서 나는 죽음을 생각했다. 그 순간 시간으로도 불로도 물로도 결코 파괴할 수 없는 카르마의 본체가 서서히 내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에베레스트는 어떤 바람에도 꺼지지 않는 등불 같았다. 고요했으나 강했고 충만했으나 허한 가슴 같았다. 설원을 품고 있는 흰 여백의 의미, 그 이상의 무엇을 안고 있었다.

태어난 것은 죽게 되고

모인 것은 흩어지고

축적한 것은 소모되고

쌓아올려진 것은 무너지고

높이 올라간 것은 아래로 떨어진다.

꿈과 잠 사이, 이승과 저승사이. 죽음과 탄생사이, 과도기적 찰나의 삶. 히말라야는 곳곳이 다르마타였다. 이곳에서는 더 높은 것과 더 낮은 것의 차이도 없고 더 큰 것과 더 낮은 것의 경계도 없었다. 모든 봉우리조차 허공보다 높지 않았고 아울러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에베레스트는 죽은 자가 아니고선, 진실로 자유로워진 영혼이 아니고선, 그 누구도 넘을 수 없고 머물 수 없는 모든 선들의 집합지였다. 동시에 세상의 모든 선들이 시작되는 열반(涅槃)의 지점이었다.

히말라야는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갈망을 좇아 보상 없이 길을 떠나는 사람들로 붐빈다. 야크와 나눠 쓰는 좁은 길을 따라 고통스런 오름 속에서 영혼을 달래려는 것이다. 앞으로 돌리면 어둠이 나오고 뒤로 돌리면 빛이 나온다는 전설의 히말라야 물레를 붙잡고 제각기 자신만의 '다르마타' 를 찾아 침묵의 길을 떠나고 있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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