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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히말쿰부의 보석, 힐러리 하이스쿨

김경한 justin747@cstimes.com 기사 출고: 2015년 12월 22일 오전 10시 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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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지 않은 아기에게 젖을 물리지 않는다. 출산 후 스스로 울지 않으면 젖을 주지 않고 생존부터 확인한다. 숨을 쉬지 않는다고 슬퍼하거나 울부짖지도 않는다. 스스로의 힘으로 코에 가득 찬 양수를 뿜어내고 눈을 부릅떠야 젖을 물린다. 자연이 선택한 동물적 생존방식이다. 그 눈망울들은 설산의 빛을 닮았다” 조나산 닐이 ‘세르파. 히말라야의 전설“ 에서 전하는 말이다. 세르파 아이들은 그래서 건강하다. 태어나 일단 살았으면 강골인 셈이다. 그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를 보고 싶었다.

히말쿰부의 중심마을 남체를 떠난 지 4시간 만에 쿰중에 도착했다. 남체-쿰중-풍기텡카-팡보체로 이어지는 원형코스다. 4천 미터 가까운 고산의 준봉들은 미려한 선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쿰중(Kumjung)의 언덕에서 학교를 내려다보았다. 짐을 매단 야크 7마리를 어린 목동이 힘차게 몰아붙이며 올라오는 등성이 사이로 초록색 지붕들이 기하학적 군집을 이루는 교정이 한눈에 들어왔다.

오른쪽으로는 더 없이 아름다운 봉우리 아마다블람이, 좌측으로는 탐세르쿠에서 뻗어 내린 사면이 말의 등줄기처럼 굵게 이어지는 쿰중 분지. 지상에서 가장 높은 고산마을 쿰중 빌리지 한쪽에 자리 잡은 학교는 평화로웠다. 마을을 바라보다가 눈 덮인 영봉들로 시선을 돌렸다. 세상이 천상의 전망대 같다. 촐라체, 타부체, 에베레스트, 로체, 아마다블람, 캉데카, 탐세르쿠, 쿠승강구루가 네팔용병 구르카 병사들의 창끝처럼 도열해 있었다.

▲ 쿰중 힐러리 하이스쿨이 있는 마을
▲ 쿰중 힐러리 하이스쿨이 있는 마을

쿰중은 꿈꾸듯 그 자리에 평화로운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20분 거리인 왼쪽 쿰데로 가는 고도(古道)가 구겨진 넥타이 모양으로 산을 가르고 있다. 쿰중과 쿰데는 세르파들의 영혼이다. 어디를 가나 그들은 이곳을 그리워한다. 세계의 지붕들 사이에 펼쳐진 자그마한 운동장에서 세르파의 새싹들은 파릇파릇하게 돋아나고 있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혼재해 있다.

지진으로 일부 피해가 있었지만 교실은 대부분 정상 수업 중이었다. 돌담장 안쪽으로 크고 작은 집이 몇 개 모여 있고 남체로 넘어가는 산 쪽에 맨땅 운동장이 있다. 이학교의 설립자 에드먼드 힐러리(1919-2008)경은 동상으로 남아 운동장가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즐겁게 바라보고 있었다. 힐러리는 인류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인물이다.

▲ 쿰중스쿨 교정의 에드먼드 힐러리 동상 앞에서
▲ 쿰중스쿨 교정의 에드먼드 힐러리 동상 앞에서

힐러리는 에베레스트 등정 후 1962년 ‘히말라야 트러스트’ 를 만들고 재정을 모았다. 목숨을 건 원정대원 세르파 텐징 노르게이와의 우정 때문이었다. 영국과 뉴질랜드, 호주, 미국에서 벌인 모금운동은 성공적이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벨기에 구호단체는 부속건물을 지어주었고 일본과 인도, 독일, 프랑스 산악인들의 기부도 이어졌다. 수많은 정성으로 쿰중은 새로운 교육을 받아들이며 인류공존의 의미를 새기는 상징으로 변모해갔다. 전 세계가 참여한 일종의 휴머니즘 실천이었다.

큰 교실 옆으로 ‘코리아 컴퓨터실’이 붙어 있었다. 한국의 산악인들이 세르파 교육지원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청각 기자재와 성금을 모아 이뤄낸 결실이다. 히말라야 트래킹에 나선 사람들에게는 이 학교가 일종의 순례코스다. 타 지역 학생들이 머무는 호스텔에는 때 묻은 이불과 낡은 침대, 의자들이 정겹게 흩어져 있었다. 3시간 넘는 마을의 학생들 기숙사다.

그들의 눈은 초롱초롱 했고 영어가 제법이다. 당당한 표정과 의젓함이 네팔의 다른 오지에서 만난 아이들과는 대조적이다. 이곳을 거쳐 간 졸업생들은 카트만두와 인도, 호주 등으로 진출해 의미 있는 일들을 하고 있다. 쿰부 일대 수 백 개의 롯지와 숙박, 유통 비즈니스를 장악하고 있다.

▲ 운동장에서 물품을 받고있는 초등학생들
▲ 운동장에서 물품을 받고있는 초등학생들

힐러리는 네팔과 쿰부를 못 잊어 했다.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고 명성과 부를 얻게 된 그는 무려 120차례나 네팔을 찾았다. 대단한 애정이다. 그가 한일은 맨 먼저 세르파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 설립이었다. 아직도 쿰중의 학교는그래서 ‘힐러리 하이스쿨’ 로 남아있다. 남체와 루크라 공항 뒷산 나북 마을에는 병원을 세웠다.

인간은 혼자 살수 없고 댓가를 바라지 않을 때 가장 행복하다. 그 순간에 보람을 느낀다. 에너지가 솟고 다시 정열의 순환계로 회귀한다. 신의 숭고한 뜻에 다가섰다는 위안. 결국 자기만의 위안에서 또 시작하는 일이 남을 돕는 일이다. 젊음의 터널을 지나면 인간은 누구나 배움과 나눔의 가치를 안다. 이때 힐러리는 40대 중년이었다. 숨가쁘게 달려 나가는 문명 앞에 지혜의 숨소리가 그리웠을 것이다. 척박하고 건조하게 만드는 물질의 진보는 고요한 정신의 세계에 휠씬 못 미치는 낮은 단계의 미학이기 때문이다.

그는 위대한 등반가이기 이전에 위대한 인간이었다. 세르파 텐징과의 생애 우정은 세계인들을 감동시켰다. 그 유형의 땅을 위해 자신의 남은 인생을 걸고 히말라야에 헌신했다. 니체의 ‘인간의 재탄생’ 을 보는 것 같다. “오늘의 나를 완전히 죽여야 내일의 내가 태어나는 것이다. 새로운 나로 변신하려면 지금의 나를 완전히 버려야 한다. 너는 너의 불길로 스스로를 태워버릴 각오를 해야 하리라. 먼저 재가 되지 않고서 어떻게 거듭나길 바랄 수 있겠는가”. 힐러리의 여생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는 2008년 고향인 오클랜드에서 숨을 거뒀다. 며칠 동안 사경을 해매면서 쿰중의 학교를 몹시 그리워했다. 세르파 아이들의 이름을 수차례나 불렀다고 한다. 네팔사람들은 그 죽음에 국민적인 애도를 보냈다. 일주일 뒤 에베레스트의 관문인 루크라 공항은 ‘힐러리-텐징 에어포트’ 로 이름이 바뀌었다. 사랑의 보은의 아름다운 고리는 아직도 히말쿰부를 비추고 있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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