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재고 털기' 블랙프라이데이 합리적 소비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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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재고 털기' 블랙프라이데이 합리적 소비가 먼저다
  • 김재훈 기자 press@cstimes.com
  • 기사출고 2015년 10월 05일 07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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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김재훈 기자] 스웨덴 스톡홀름시에 위치한 C 브랜드 운동화 매장. 비행기로 약 3시간 거리인 이웃나라 스페인에서 왔다.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으로 무장한 제품들이 눈길을 끈다. 현지 소비자들 사이에 인지도는 '별로'다. 평가도 인색하다. 매장 직원에게 이유를 물었다.

"스웨덴은 겨울이 길다. 매우 혹독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합리적이다. 1000크로나(한화 약 14만원)짜리 C 운동화 살 돈으로 털신발 3켤레 사는 게 낫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나도 동의한다. C 운동화는 이곳 멋쟁이들이 주로 신는다. 세일을 해야 그나마 판매량이 조금 올라간다."

해당 제품은 한국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롯데, 신세계, 현대 등 주요 백화점에 빠지지 않고 입점해 있다. 마니아층을 일부 형성하고 있을 정도로 찾는 소비자가 많다.

가격은 가죽소재 단화 기준 평균 20만원 선. 40만~50만원을 호가하는 제품들도 상당수다. 스웨덴 매장과 비교해 30% 이상 비싸다. 그런데도 품절 사태는 빈번하다. 가격이 높게 형성되는 배경이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그대로 투영한다.

내수 경기 진작을 위해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가 소비자들의 실소를 자아내고 있다.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싸지 않다'는 식의 불만이 상당하다. '맘에 드는 건 언제나 비싸다'는 '고전'에 다름 아니다. 이유가 있다.

사실 한국은 이미 수 년 전부터 상시 '블랙프라이데이'를 실시하고 있다. 옥션, G마켓, 11번가, 쿠팡, 티몬, 위메프 등 '범 온라인' 쇼핑 업체들이 주도했다.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출혈성 가격경쟁이었다. '박리다매'가 머쓱해질 정도로 원가를 위협한 지 오래다.

이들이 취급하는 소비재는 매우 광범위하다. 농·공·축산품을 비롯 소위 '명품'까지 그 영역을 파괴하고 있다. 손대지 않은 영역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유통강자인 롯데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계한 '옴니채널'에 힘을 쏟고 있는 현실은 이 같은 변화기조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소비시장의 '대격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월 현재 소비자들은 실시간 가격비교를 통해 제품을 구매하고 있다. 네이버, 다음카카오 등 포털 사이트들을 적극 활용한다. 구매루트는 PC에서 모바일로 빠르게 전이되고 있다. 소위 '바가지'를 쓰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됐다고 보면 틀림 없다.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가 새롭지 않은 핵심 이유다. 현실을 도외시 한 '탁상행정'이란 지적을 면키 어렵다. 

"그간 세일을 하지 않았거나 그 폭이 적었던 제품, 브랜드 들이 (블랙프라이데이에) 참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태다. 국내·외 대형 가전들이 실종됐다. 수입 화장품이나 가방, 지갑 등 물 건너온 제품들은 특히 그렇다. 가격을 올려도 소비자들은 없어서 못산다고 아우성이다. 배짱영업이 통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강제적으로 참여시킬 수 없는 노릇이니 그냥 이름만 '블랙프라이데이'가 아닌가 싶다."

유통업에 정통한 관계자의 말이다.

실제 소비촉진을 위한 정부의 개별소비세 부과 범위 축소에도 샤넬, 에르메스 등 명품브랜드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올해 들어 평균 3~10%까지 가방·의류 등 제품의 판매가격을 인상했다.

에스티로더그룹, 버버리 뷰티 등 수입 화장품들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팔리는 제품의 가격을 올리는 것은 이윤추구가 목적인 기업들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경영판단이다. 

'호갱'으로 전락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한 소비자 스스로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그간 얼마만큼 있었는지 되짚어볼 일이다. 오늘의 불상사를 낳은 '숙주'의 부끄러운 흔적이 흐릿하게나마 엿보인다.

정부의 준비부족과 소비자들의 왜곡된 소비의식이 결합된 촌극이 각 백화점 대형 현수막을 통해 이 시간에도 홍보되고 있다.    

기업의 일방적 가격결정권을 쥐고 흔들 수 있는 건 소비자들의 단합된 힘뿐이다. 각 기업들의 '재고 털기' 호재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는 그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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