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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발렌베리인가

김경한 justin747@cstimes.com 기사 출고: 2015년 08월 28일 오전 10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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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8

 

 

왜 발렌베리인가

 

 

경영권 승계로 벌어지는 재벌댁의 막장드라마를 보다가 다시 발렌베리(Wallenberg)생각이 났다. 유럽대륙으로부터 해적취급 당하고 살아온 암흑의 역사를 털어내고 복지와 과학의 성지를 건설해낸 감동의 현대사,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위상을 통째로 바꿔놓은 기적의 주인공 발렌베리 그룹은 인간의 절제와 창의가 만들어낸 캐피탈리즘(자본주의)의 역작으로 평가받는 글로벌 초 일류기업이다.

통신장비의 선두주자인 에릭슨, 세계최대의 의약품 로섹의 신화를 만들어낸 아스트라 제네카, 스칸디나비아의 날개 SAS, 산업공구 분야의 1인자 아트라스 콥코, 하이테크 전투기의 강자 사브, 대형트럭의 롤스로이스 스카니아, 초일류 기업의 대명사 ABB, 스웨덴 왕가의 로열뱅크 SEB, 세계2위의 투석치료 전문기업 감브로, 세계 가전시장의 거인 일렉트로룩스. 유럽증권거래의 진원지 OMX. 북유럽최대의 IT컨설팅업체 WM데이터.

이들 14개 회사를 이끌고 있는 산업왕국 발렌베리는 스웨덴 국민총생산 30%, 증권거래소 시가총액 40%를 차지하는 수퍼기업집단이다. 그들은 유럽의 빈민가 스웨덴을 세계적 선진국으로 바꿔놓았다. 혹독한 기후와 열악한 산업 조건 속에서 피워낸 의미 있는 꽃송이다. 인구 850만 스웨덴을 대표하는 국민기업의 수준을 넘어서 글로벌 기업집단의 리딩 모델로 꼽힌다. 왜 그럴까.

비결은 발렌베리 경영승계의 엄격한 규율 때문이다. “혼자의 힘으로 명문대를 마칠 것, 부모의 도움 없이 해외유학을 다녀올 것, 해군장교로 복무할 것”. 이 조건을 충족시키는 직계가 없으면 사촌까지 범위를 확대해 청년시절부터 철저한 관리와 검증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살하거나 현실도피를 시도하는 사고도 나지만 원칙은 엄하게 지켜진다. 전통은 1856년 창업자 오스크 발렌베리가 스톡홀름에서 엔실다 은행을 창업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5대에 걸쳐 150년 동안 변함없이 이어져 오는 정신이다.

물론 투명성과 도덕성을 강조하는 경영철학이 바탕에 깔려있다. 발렌베리의 소유권은 특권이 아니라 책임을 의미한다. 가문의 부를 신이 주신 ‘선물’로 여겨 잘 키우고 가꿔나가야 할 ‘임무’ 라고 생각한다. 일궈낸 기업의 이익은 사회공헌에 아낌없이 쏟아 붓는다. 가문만의 재산증식보다는 스웨덴 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위한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다. 창업이후 몇 대를 지나온 현재의 대주주 피터 발렌베리의 재산은 200억 원에 불과하다.

스웨덴의 기업지배권을 가진 경영자 연합(우리나라의 전경련 역할)이 한때 기업이익금의 85%를 법인세로 내자고 결의했다. 이 엄청난 세금을 피해 다른 재벌들이 스위스 탈출을 시도할 때도 발렌베리 가문은 노벨재단보다 더 큰 공익재단을 출범시켜 사회공헌과 첨단과학기술에 우직스러운 지원을 멈추지 않았다.

발렌베리 소속기업은 모두 독립경영이 원칙이다. 14개 기업을 지배하는 ‘인베스터’ 가 지주사다. 검증을 거친 가문의 후계자가 인베스터를 이끈다. 인베스터 위에는 공익재단이 있다. 자회사들로부터 배당받은 돈을 인베스터가 공익재단으로 보내면 이 수익금을 스웨덴 과학기술 발전에 투자한다. 과학자, 공학자, 의학자들의 최고 후원자다. 초일류 국가 스웨덴 탄생의 비밀이다.

롯데 두 아들의 이전투구는 너저분해서 더 이상 말을 보태고 싶지도 않다. 지금처럼 엄중한 양국의 역사적 시점에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연출하는 진실게임이나 10대그룹 가운데 꼴찌인 연봉과 낮은 직장 만족도, L자 시리즈로 이어지는 비밀 지배구조, 2% 지분의 황제경영, 한 지붕 세 가족에 얽힌 수많은 등장인물의 각개전투, 내용도 파악하지 못하고 허둥대는 정부의 허술한 감독, 먹고 마시는 장사로 쌓아올린 바벨탑이라며 잠실 100층 건물을 조롱하는 불매운동까지. 제발 혼란은 이 정도에서 끝내주길 바란다.

자본주의의 최대 꽃은 자기성취와 재산상속이다. 이를 탓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내 기업 내 마음대로’ 의 경영권 승계 구태는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한국 재벌의 종착역은 자식들의 싸움터라는 창피한 등식을 깨야 한다. 유교적 가족기업의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치부할게 아니라 사회가 공감할 수 있는 혁신을 고민해야 한다. 탐욕과 막장의 도가 지나치면 자기결정이 불가능해짐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늘 발렌베리 같은 기업을 부러워하면서 연구도 하고 주변을 서성거리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숫자 채우고 겉으로 모양내기에 급급해 달려온 지난 세월을 이제는 품격과 깊이로 대체할 때도 되었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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