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의 세상이야기] 츠타야의 유쾌한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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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츠타야의 유쾌한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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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높은 푸른 나무가 시원하게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울타리도 없이 사방으로 뚫려 있는 오픈 디자인은 새롭다 못해 낯설다. 놀이터를 옮겨 놓은 듯 하고 자유공간 같기도 했다. 아니면 사람들이 모여들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채우는 거대한 충전소 같은 분위기였다. 메인도로변에서 보면 자그마한 간판 하나만 붙어있어 이곳이 소문난 서점인지 집중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츠타야 서점은 그렇게 선을 보였다. 책방은 이래야 한다는 선입견을 완전히 뒤집은 반란이었다. 야외공원을 기초로 만든 아담한 인텔리젠트 건물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책파는 곳을 상상하고 갔다가 하나의 작품을 돌아본 느낌이었다. 낮은 2층 건물 3개동을 중간 브릿지로 연결해낸 공법. 내부에서는 하나의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연결통로는 투명 소재로 처리해 외부의 빛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100여개의 전문 서적 코너를 따라 돌 수 있도록 동선을 그려냈다. 밖에서 보는 왜소함은 내부에서의 확 트인 공간감으로 상쇄된다.

서점 중앙에 배치된 스타벅스가 이색적이다. 커피와 책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콜라보레이션 해낸 것이다. 커피향속에 독서와 지식탐구를 함께 소구한 셈이다. 패밀리마트와 애견샵, 명품식당 아이비(IVY) 플레이스, 사진용품점, 소규모 공연장도 함께 들어서 있다. 수시로 신간서적 발표회가 열린다. 그래서 츠다야 서점보다 '다이칸야마 T-하우스 가든' 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외벽의 아름다운 T자형 벽돌은 츠타야(TSUTAYA)의 이니셜 영문 첫 자를 디자인해 따로 구워냈다고 한다. 모든 컨셉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어 색다른 맛을 낸다. 놀이와 지식충전의 공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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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칸 야마는 오래전부터 외국 대사관들이 많은 동네다. 주변의 500여개 가게들은 츠타야 덕분에 상권이 완전히 바뀌었다. 하루 2천명에 불과하던 방문객이 주말이면 3만 명을 넘는다. 식사를 하러 오는 사람, 강아지 용품을 사러 오는 사람, 책을 보거나 구매하고 또 이 분위기를 즐기려는 관광객까지 거리 전체가 늘 북적인다. 신개념의 쯔타야는 단기간에 도쿄 의 명소가 되었다.

"책은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중장년층의 기호품이다"고 하지 않았던가. 과연 그랬다. 인문 문학, 아트, 건축 디자인, 자동차 바이크, 요리, 여행의 6개 테마섹터는 처음부터 50-60대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물론 주제별 전문메니저가 각 코너마다 고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책이야기에서 시작되지만 일상의 대화나 인생 상담까지 확장된다. 나이 지긋한 소비자들이 이곳을 다시 찾는 이유를 알만하다. 바로 옆에는 T-트레블이 있다. 책속에서 자신의 꿈을 발견하면 바로 옆 코너에 와서 호텔과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떠나라는 뜻이겠지.

볼거리 읽을거리 먹을거리가 가득해 한나절을 보내고도 아쉬웠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수 없다. 주머니가 채워지면 문화와 창작의 세계가 그립다. 그게 채워져야 만족한다. 인간만이 갖고 있는 특이한 원형질이다. 인생살이에 지쳐 말라가는 영혼을 듬뿍 채워주는 멋진 서점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있다.

츠타야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케가미 도모코(池見知子)와 건축디자이너 하라 켄야(原 硏哉)가 참여했다. 일본의 현대 지식건축 디자인계의 잘 알려진 파트너다. 이밖에도 수많은 문화계 인사들이 공동으로 아이디어를 모아줬다. 21세기형 초현대식 서점 유리창가 독서의자에 나란히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아름답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도심 속에서 찾은 낭만의 파라다이스다. 한번 들어서면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든 마법의 영지하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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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란티스 북스는 에게해의 기적으로 기억된다. 그리스 산토리니 섬에 남아있는 서점으로 전 세계 작가지망생들의 버킷리스트다. 파리의 세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남미의 건축상을 휩쓴 브라질의 빌라 회전문서점,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이 영감을 받았다는 포르투갈 리스본의 카페 브레리아 엘 펜두로. 지구촌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서점 20선'(시미즈 레이나 저작) 가운데 츠타야는 도시의 문화를 키우는 명소로 18위에 랭크되어 있다.

츠타는 담쟁이 넝쿨이다. 말하자면 츠타야는 담쟁이 넝쿨이 덮인 책집이다. 저것은 벽/ 모두가 절망이라고 느낄 때/ 도저히 넘을 수 없는 한계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수 천 개의 잎을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는 시처럼 척박한 도시가 지식의 푸르름으로 모두 덮여질 때를 염원하는 모습이었다.츠타야는 수 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기노구니야 같은 대형 서점의 구조를 완벽하게 허물어냈다. 일본 주요도시마다 츠타야 서점은 들어서 있다. 그러나 다이칸야마 T-하우스는 특별하다. 책을 읽지 않는 세대들도 찾아와서 유쾌하게 돌아보고 다른 휴식을 동시에 취할 수 있도록 융복합을 시도한 것이 가장 큰 차별점이다. 지식을 접하도록 지혜롭게 안내한다는 명제에 충실한 현장이다.

우리나라에 한때 6천개의 서점이 있었다. 시대에 밀려 지금은 1300개 정도 남았다. 그나마도 생존이 아슬아슬하다. 신촌과 홍대 앞, 대학로의 문화거리가 옷가게와 부동산, 주점으로 변해가는 현실을 목격하며 살고 있다. 먹고 입고 마시는 세태에 밀려 문화는 갈 곳이 없다. 한국의 츠타야를 기대하면서 발길을 돌렸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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