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국거래소 대대적 개편, 명분과 실리 없인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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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한국거래소 대대적 개편, 명분과 실리 없인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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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김수정 기자] "시위하고 그런 건 좀 안 나갔으면 좋겠는데…"

지난 2일 오후 최경수 한국거래소 이사장의 '한국거래소시장 경쟁력 강화 전략' 발표를 30분 가량 앞둔 상황. 

거래소 기자실 입구에 대기하고 있는 임원진 사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 중 누군가는 전화기 너머로 사뭇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거래소 개편에 강경하게 반대하고 있는 거래소 노동조합을 의식하고 있는 듯 했다. 발표는 별 탈 없이 끝났다.

같은 날 오전 금융위원회는 한국거래소를 올해 안에 지주회사 체계로 전환해 내년에 기업공개(IPO) 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한 거래소 개편안을 발표했다. 유가증권·코스닥·파생상품시장 등 거래소 산하 시장들은 자회사 형태로 물적분할 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다 대체거래소(ATS)를 설립, 각 시장들 간의 발전적인 경쟁 구도를 조성함으로써 자본시장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이에 부응해 거래소는 구체적인 경쟁력 강화 전략과제를 들고 나왔다. 수요자 중심 서비스 강화 등 4개의 큰 방향 아래 벤처 성장 지원, 조직운영 효율화 등 12개의 세부 과제들로 꾸려졌다.

거래소를 지주회사로 개편함으로써 해당 과제들을 추진해 창조경제를 선도하는 아시아 금융허브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다.

하지만 이 같은 장밋빛 밑그림에 '꼼수' '급조' 등의 의혹이 겹겹이 드리우고 있다.

거래소 노조는 금융위 발표 직후 '무늬만 바꿔서 코스닥 분리를 계속 추진하려는 꼼수'라며 질타했다.

당국이 본래 추진하려던 코스닥 분리 방안이 부정적인 여론에 휩싸이자 거래소 지주회사 개편이라는 타협안을 꺼내 들었지만 여전히 목적은 코스닥 분리라는 것.

당초 정부는 코스닥을 분리해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기업 상장과 자금 유출입을 활발히 하고 잃어버린 역동성과 경쟁력을 제고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IT버블' 사태가 재현될 것을 우려하는 반발의 목소리에 가로막혔다. 이른바 IT버블 시기라 불리는 1996~2002년, 부실 기업들이 코스닥에 대거 상장해 각종 불공정 행위로 시장을 오염시켰다. 이로 인해 200만명에 달하는 개인 투자자들이 25조원의 피해를 입었다.

코스닥 체질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결국 2005년 코스닥이 거래소 지붕 아래 편입된 배경이기도 하다.

지난해에만 250억원 적자를 본 코스닥이 스스로 생존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현실적인 지적도 반대 여론에 한 몫 했다.

이렇듯 도무지 실리를 찾을 수 없는 코스닥 분리 방안이 겉만 번지르르하게 재포장돼 다시 나왔다는 얘기다.

거래소 지주회사 개편안을 굳이 서둘러 추진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의견도 상당하다.

조직 개편에 따라 인력과 전산 인프라 확보에 들어갈 물리적인 비용, 부작용 등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선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주회사 개편을 통해서만 추진할 수 있는 차별화된 사업을 제시하는 데도 실패했다.

이날 거래소가 발표한 30여개의 세부 과제 대다수가 기존에 발표한 과제·전략과 겹쳤다. 투자자보호, 금융투자업계 상생발전 등과 같은 '당연히 해야 할 일'도 포함됐다. 굳이 지주회사로 개편하지 않아도 추진 가능한 사업들이었다.

거래소는 발표 현장에서부터 이와 관련한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어찌 보면 당국이 창조경제의 성과를 단기간 내에 가시화하려고 무리수를 두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게 당연해 보인다.

업계에선 물론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글로벌 선진 자본시장으로 도약하기 위해 거래소 지주회사 체제를 추진한다는 당국의 논리에 대해 여전히 물음표만 가득하다.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는 방법은 간단하다. 지주회사 체제를 갖춰야만 추진할 수 있는 획기적인 사업이 뭔지, 그에 따른 이점은 어떤 것들인지 명쾌하게 제시하는 것이다.

겉만 번지르르하게 다듬은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진짜 명분과 실리를 확인시켜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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