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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정원- 겐로쿠엔. 핫포엔

김경한 justin747@cstimes.com 기사 출고: 2015년 07월 03일 오후 3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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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3

 

 

신들의 정원-겐로쿠엔. 핫포엔

 

 

야생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절제가 온몸에 와 닿았다. 들판을 닮았고 산에서 왔으되 자연과 다른 적절한 배치와 알맞은 조화가 정신을 가지런하게 일깨워 준다. 하늘을 향해 그려진 높낮이의 완급은 물론이고 지상에 수평으로 배열된 질서가 정연하다. 숲은 많은 초목들이 자연스럽게 얽혀져 피고지고 세월을 견디며 만들어지는 시간의 역사다. 그 자유분방함에서 음률과 조화를 떼어내 인간세계 속으로 옮겨놓은 전설이 곧 정원이다. 도심에 있으면서 깊은 산의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는 여백, 정원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이다.

겐로쿠엔(兼六園)의 숲길이 힐링으로 다가오는 것은 보통의 상상을 넘는 그 무엇 이었다. 정갈한 뜰에 곡선으로 휘어지고 구부러진 가느다란 오솔길, 양옆으로 곱게 깔린 파편몽돌의 미학, 점인 듯 선인 듯 마당을 넘어 담 저쪽 산으로 이어지는 푸르름. 심산유곡과 속세를 연결시켜주는 영혼의 통로다. 홍송과 무화과, 스기, 모미지로 짜여진 내정원을 지나 물길이 휘돌아 나오는 외정원 난간으로 발길을 돌렸다. 사면이 고요 속으로 사위어가는 석양에 묵상의 구도가 저절로 샘솟는다. 가나자와(金澤) 겐로쿠엔의 첫 인상이었다.

에도시대의 정원으로는 일본을 대표하는 명소다. 15세기말 혁명에 성공한 다이묘(大名)들이 도쿠카와 시대에 접어들어 태평성대를 꿈꾸면서 만들었던 막부의 자랑이자 긍지다. 여름 이 계절에 어울리는 옷을 갈아입은 정경을 보려고 찾아온 수많은 국제관광객들이 신기한 눈빛을 보내고 있다. 수목의 그림자를 따라 움직이는 속세의 영혼들 행렬을 함께 따랐다. 가나자와는 사무라이 시대 이시카와(石原)현를 대표하는 중심지였다. 도쿄와 오사카, 나고야 다음으로 큰 도시이면서 옛사람들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고도다.

 
          
                      ▲가나자와 겐로쿠엔 넓은 연못 가쓰미 가이케 앞에서.
 

겐로쿠엔이 오랫동안 일본 서북지역(노도반도일대)을 대표하는 명소로 손꼽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21세기 미술관이나 가나자와성(金澤城)도 있지만 겐로쿠엔이 없었다면 그야말로 뚜껑 없는 주전자다. 겐로쿠엔은 송나라 시인 리커페이(李格菲)의 ‘낙양명원기’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광대함, 고요, 기교, 고색창연, 수로, 조망. 이 여섯 가지가 완벽하게 갖춰져야 신들을 모실 수 있는 천하의 정원으로 여겼던 당대 시인묵객들의 이상향을 만들어 놓은 것. 이름에서 오는 깊이가 예사롭지 않다. 이바라기(茨城)의 카이라쿠엔(階樂園), 오카야마(岡山)의 고라쿠엔(後樂園)과 더불어 일본열도 3대 정원 중 으뜸으로 친다.  도심에 11헥타르 면적이 직사각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9천여 그루의 귀한 나무와 185종의 식물들이 한 살림으로 묶여 있다.

가나자와 사람들은 이 정원의 아름다운 사계를 보고 사는 것이 인생의 참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1822년에 지금의 이름을 붙였다. 12번째 가나자와 성의 주인이 대규모 개조를 통해 웅대한 회유식 구조로 바꿨고 상상력을 동원해 분수를 설치했다. 땅에서 힘차게 솟아 창공을 꿰뚫는 물줄기는 당시 사람들에게 신령을 부르는 장소였다. 세월이 지나면서 각지의 좋은 나무와 화초를 모아다 옮겨 심고 정성을 다한 것이 오늘날의 명품을 만들었다.

수령 300년은 보통이다. 자택마당에 꾸미기 시작한 것이 중국식 정원의 유래지만 상하이 예원(藝園)이나 시자오(西交)빈관, 베이징 중난하이등의 정취와는 완전히 다르다. 대륙의 정원이 자연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거친 분위기라면 일본정원은 원시와 인간의 숨결이 적절한 타협과 수많은 교감을 거쳐 이뤄낸 섬세함이 특징이다. 장인들의 손길로 정결한 품격을 빚어낸 인공의 녹색섬이다.

겐로쿠엔을 기억속에 새기고 도쿄로 향했다. 일본의 또 다른 자랑거리 핫포엔(八芳園)을 돌아보기 위해서다. 여름 꽃이 만발한 주말 이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 소설가 엔도 슈사쿠가 명명한 고주안(정원음식점)은 하객들로 분주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낮은 언덕에 사방으로 물길을 내고 계단아래 넉넉한 연못으로 연결시켰다. 정원 입구 왼쪽은 울창한 대나무 숲이 색다른 볼거리다. 수초가 아름다운 물가에는 탐스러운 오색잉어들의 유영이 한가롭다. 사방, 팔방 아무 곳에서 바라보아도 아름답다는 핫포엔의 의미처럼 면사포를 쓴 신부들이 눈꽃 같다.

에도시대 도쿠가와의 측근이었던 오쿠보 히에자에몬의 저택이었다가 점차 면적이 넓어졌다.  메이지 유신이후에는 히다치 그룹의 창업자인 사노스케 회장 소유로 주인이 바뀌었다. 핫포엔의 백미는 역시 분재였다. 소문대로 수령 500년짜리 향나무가 2미터의 낮은 고사목으로 손질된 자태는 예술의 경지에 가까웠다. 인고의 세월을 견뎌온 내공이 못내 발길을 붙든다.  300년 단풍, 800년 모과의 나이테는 수목의 세계를 벗어난 하나의 작품이었다. 천년에 걸쳐 권부에서 키워지던 분재들이 이제야 세상에 나와 자유롭게 사람들을 맞고 있는 것이다.



           
                                ▲도쿄 핫포엔의 소나무 분재. 수령 700년.
 

도쿄에는 하마리큐나 모리, 야스다, 뉴오타니 정원등도 있지만 역시 핫포엔에 견주기는 힘들다. 자연과 인간의 숨결이 적절하게 공존하는 고요와 대칭은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최근에는 관광보다 순례 목적으로 일본정원을 둘러보는 이들이 많아졌다. 숲은 인간에게 본질을 질문한다.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가를 묻는다. 말하자면 삶이란 해결해야할 문제가 아니라 각자가 주어진 길대로 살아가야 할 신비임을 깨닫게 해주는 것. 고통은 결국 내 마음속의 행로 일뿐 딛고 일어나 일상으로 되돌아가면 다시 살아야 하는 이유를 확인받는 마중물이 될 것임을 알게 해주는 곳. 핫포엔이 건네는 처방전이다.

정원은 공존의 미학을 전해준다. 힘을 지녔지만 그 힘을 억누를 줄 아는 소나무와 경계선을 넘지 않으며 유쾌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대나무, 우아함과 낭만으로 뻗어나가는 모미지, 따뜻한 파스텔 빛깔로 응원하는 꽃들. 모두가 조화롭고 규칙적이다. 넘치지 않으면서 다함께 담백함을 그려내고 있다. 이들은 신성해질 단계에 이르기 전에 멈춰 선다. 상반되는 모든 요소들이 함께 어울려 뒤섞이면서 가장 숭고한 정토를 이룩해낸다.

여행길에서 돌아온 며칠 뒤 소식을 들었다. 출판가에서 알아주는 나남의 조상호 사장이 인생 황혼기에 이색 선언을 했다는 기사다. “지금까지 이룬 내 인생의 모든 업을 다 바쳐 필생의 정원을 만들고 싶다. 마누라만 빼놓고 돈 되는 것은 다 팔아 명품 정원 하나를 세상에 남기고 떠나고 싶다”  그래. 사람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언젠가 인생에 지치고 외로울 때, 세상이 힘들 때 그 여백을 채우기 위해 정원을 생각했을 거야. 다시 찾고 위로받고 싶은 곳으로 말이야. 조 사장의 포부가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같은 땅, 같은 하늘아래 그곳에서 나고 피고 지지만 만나지 못하더니 낙엽 되어 비로소 한 몸으로 포개졌노라”. 시인 이재무의 이야기처럼 정원은 만든 이와 보는 이의 영혼이 교감해서 하나의 미학으로 승화된다.  핫포엔에는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었다. 여름 꽃은 짧다. 그래서 덧없다. 하지만 그 덧없음 때문에 인간의 생 또한 가치를 지니는것 아니겠는가.  겸손과 예지의 가장 훌륭한 교훈은 깊고 고요한 대지의 정원에서 얻게 되리라는 것을.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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