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여성비하' TV광고 자정노력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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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여성비하' TV광고 자정노력 절실하다
  • 한행우 기자 hnsh21@cstimes.com
  • 기사출고 2015년 06월 15일 07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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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한행우 기자] "전구 교체할 땐 아빠, 컴퓨터 교체할 땐 오빠."

최근 논란이 된 금호타이어의 '타이어프로' 광고다. 문제의 핵심은 '성차별'이다. 유난스럽다고? 아니, 이 광고에는 성 역할에 대한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고정관념이 그대로 반영돼있다.

힘쓰는 일, 전문성을 요하는 일은 남자의 몫이라는 도식이다. 광고 속 여성캐릭터는 철저히 수동적인, 혹은 성가신 일에서 한 발 물러나 있는 이기적 존재로만 읽힌다.

핸드백 하나도 제 손으로 들지 않는다며 '김치녀'라는 융단폭격을 퍼붓는 일부 여성혐오 사이트의 시선과 일정 정도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코웨이 정수기 광고는 한 술 더 뜬다.

"밤늦게 찾아온 남편의 친구들 앞에 남은 과일 몇 점으로 '여신'소리 듣는데 필요한 시간은…"

늦은 시각 남의 집을 불쑥 찾아가는 건 결례 중의 결례다. 이런 무례함에 직면했는데도 여성은 미소를 잃지 않는다. 심지어 곧장 주방에서 '여신'소리를 들을 만큼 솜씨를 발휘, 손님을 접대한다. 

특히 이 '여신'이라는 단어에서는 친절·상냥·순종 따위를 여자의 미덕이라 여기는 남성 우월주의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렇게 이 '예쁜' 광고에는 남성의 욕망이 적극 반영된 '착한 여자 콤플렉스'가 녹아 있다.

'차줌마'(차승원+아줌마) 신드롬으로 대변되는 남성 셰프의 전성기에도 불구하고 냉장고 광고 등에서 주방에 서있는 건 '아직도' 대부분이 여성이다. 남녀(부부)가 함께 일하는 그림은 찾기 어렵다.

최근 전파를 탄 에쓰오일(S-Oil)의 '채우세요' 광고를 들여다보자.

"핸드폰 좀 그만하지"라고 말하는 아버지와 아들은 식탁에 '앉아' 식사 중이다. 엄마는 주방에 '서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영상 속 여성은 가족이 함께하는 식사의 주체가 아닌, 남편과 아들의 배경에 그칠 뿐이다.

맞벌이가 보편화됐어도 가사노동은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육아도 마찬가지.

"당신이 아이 밥에 올인 하는 순간에도 키 성장 골든 타임은 흘러가고 있습니다"라는 한국야쿠르트 '키성장 솔루션 UP' 광고에서 아이와 씨름하며 밥 먹이는 것은 여성이다.

"아이의 평생 키, 엄마가 만들어주세요"라는 멘트로 광고는 쐐기를 박는다. '아이가 키 작은 것은 못 챙긴 엄마 탓'이라는 '신 칠거지악' 담론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광고의 파급력과 영향력은 막강하다. 특히 인쇄 광고와 달리 영상 광고는 소비자들이 주어진 정보를 인지적으로 거르기가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무의식 속에 광고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여과되지 못한 채 자리잡을 우려가 있다는 얘기다. 스펀지처럼 흡수력이 빠른 성장기 아동·청소년은 더욱 그렇다.

여성 모델들이 개그맨 신동엽의 뺨을 번갈아 후려치는, 쿠차의 '싸다구' 광고에 대해 특히 부모 소비자들이 분개했던 게 대표적이다. 

아이들이 광고를 접한 뒤 부모의 뺨을 '웃으며' 때린다는 항의가 줄을 이었다. 결국 광고는 교체됐다. 

여성의 역할과 능력을 한정 짓는 광고가 결코 가볍게 다뤄져서는 안 되는 이유다. 남성에게는 편견을, 여성에게는 한계를 주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때로 일부 기업들은 문제가 되는 CF에 대해 그 화살을 광고제작사로 돌리기도 한다. 하지만 최종 승인권을 쥐고 있다는 점에서 무거운 책임감을 공유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전파는 공공재다. 제품·기업 홍보에만 열 올리느라 정작 우리 사회가 소중하게 지켜온 가치들을 거스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거듭 생각해보는 자세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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