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민달팽이' 20대 주거빈곤층 대책 마련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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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민달팽이' 20대 주거빈곤층 대책 마련 절실하다
  • 김은주 기자 winter@cstimes.com
  • 기사출고 2015년 03월 30일 07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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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김은주 기자] "서류심사 대상자가 아닙니다."

기자는 최근 SH공사가 모집하는 전세임대주택에 지원서를 넣었다가 고배를 마셨다.

건강보험공단∙국세청에서 입증하는 월평균 소득내역과 주민등록초본에 기재돼 있는 서울시 전입일, 지원하는 주택의 유형과 보증금 및 월세를 꼼꼼히 확인하고 지원서를 제출했다.

특히 전입일자는 입주자 추첨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그런데 다가구주택의 서류심사 커트라인은 1981년 4월2일이었다. 기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전입신고를 마친 경쟁자들이 수두룩하단 얘기였다. 번거로운 지원과정 때문에 경쟁률이 높지 않으리라 짐작했었다. 내심 당첨을 기대했었으나 모든 게 물거품 됐다. 

바꿔 말하면 주거빈곤을 해결하고자 불철주야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소비자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민달팽이 유니온'이 SNS에 모집공고를 링크하지 않았더라면 기자도 모르고 지나쳤을 일이다. 민달팽이 유니온은 청년주거권 보장을 위해 제도개선을 실천하는 비영리 단체다.

문득 '민달팽이'란 단체의 이름이 뇌리에 각인됐다. 비가 내리면 스멀스멀 조용히 등장하는 달팽이. 그 중에도 민달팽이는 정말이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등에 집이 없기 때문이다.

밟혀도 바스락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집 없는 민달팽이와 오늘날의 젊은 20대가 초라하게 닮았다.  

지난 1월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가 발표한 대학생 원룸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원룸 세입자 대학생들은 평균 보증금 1418만원, 월세 42만원을 지출한다. 본인이 직접 세를 내는 경우는 17.8%에 불과했다.

'도토리 키 재기'일지라도 대학생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부족하지만 기숙사와 지역학사가 마련돼 있고 SH공사의 대학생임대주택과 희망하우징, LH의 대학생 전세금지원제도를 노려볼 수 있다.

취업준비생 등의 20대 1인가구는 그야말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서울지역 청년 1인가구의 36%가 주거빈곤 상태고 그들의 주거빈곤율은 2000년 이후 정체돼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주택법이 정한 최저 주거기준 미달인 불량 환경에 사는 전국의 청년빈곤층은 139만명에 육박한다. 특히 서울의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 비율은 전국의 2배 이상이다.

소득은 좀처럼 늘지 않는데 임대료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데다 고용안정을 보장받기 힘든 청년층의 열악한 환경 탓이다. 느리고 작고 눈에 잘 띄지 않는 민달팽이처럼 오늘날 20대도 마찬가지다.

청년세대 대부분은 아직 등에 집은커녕 방 한 칸도 얹지 못했다. 하지만 달팽이가 게을러서 느리고 작은 것은 아니다. 20대 청년세대가 아직 '민달팽이'라는 사실은 그들의 게으름으로 얻은 벌이 아님에도, 우리는 느리고 작고 눈에 잘 띄지 않는 존재가 됐다.

소설가 김영하씨의 말처럼 "단군 이래 가장 많이 공부하고 외국어에도 능통하고 토익점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아는" 우리가 "그중에서 단 하나만 잘해도, 아니 비슷하게 하기만 해도 평생을 먹고 살 수 있었던" 세대보다 느리게 살았다는 건 분명한 오명(汚名)이다.

찰나의 소나기를 찾는 민달팽이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다. 터무니 없는 조건의 열악한 방 한 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세를 지급하면서도 월세라는 단기임대에 주거권을 온전히 내맡겨야 하는 20대의 모습이 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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