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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과 소와 서귀포

김경한 justin747@cstimes.com 기사 출고: 2015년 02월 27일 오후 1시 59분

http://www.cstimes.com

2015.02.27

 

 

이중섭과 소와 서귀포


 

 이렇게 살아있는듯한 소를 어떻게 그렸을까. 무슨 생각으로 소라는 대상을 선정했을까. 굵고 거친 터치로 나타난 소의 그림 속에 인간의 마음이 빠져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래 봐왔던 이중섭의 많은 것이 수수께끼였다. 역사의 파도위에서 뒤틀렸던 한 개인의 삶을 뒤늦게 돌아본다는 일은 슬프다. 이 세상에 던져진 메시지를 그 때의 시간으로 다시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몇 번을 발걸음 했던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 봄꽃은 이른 계절을 재촉하고 흘러가버린 화가의 기억들을 더듬는 늦겨울 오후는 빠르게 기울어 갔다.

 고개를 들어보니 푸른 바다만 고요하다. 맑고 투명해서 더욱 처연하다. 바람은 불어도 공기는 포근하다. 파도소리와 함께 벼랑을 향해 아낌없이 쏟아지는 폭포의 고함소리가 울창하다. 그 소리 그 냄새는 여전하다. 대향 이중섭이 머물렀던 곳은 ‘이중섭 거리’로 단장되어 오가는 이들로 분주했다. 바다와 폭포와 나무들, 동백꽃까지 여전한데 그가 부재한 낯선 풍경이다. 몇 년 전과 달라진 것은 일본인 부인 이남덕(야마모토 마사코)이 기증한 중섭의 팔레트가 유품으로 전시되어 있다는 것.

 굶주림에 지쳐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떠난 그녀가 육필로 써 보낸 편지 또한 애절하다. 빛바랜 종이봉투, 잉크를 찍어 펜으로 흘려 쓴 사부곡 앞에 많은 이들이 떠날 줄을 몰랐다. 서귀포 서귀리 현씨 집 헛간 3평짜리 토방이 고스란히 시야에 들어왔다. 그때 모습대로 초가지붕 끝이 가지런하다. 솥단지 두 개를 걸고 어린것들과 보리풀대죽을 쑤었던 곳. 목숨을 연명하던 고단한 삶이 녹아있었다. 그 좁은 공간에서 네 식구가 벌거벗은 영혼을 보듬었던 날들의 서귀포 언덕은 지금의 낭만이 아니라 고통이었을 것이다. 도쿄유학과 사랑과 어린 날의 부유한 추억은 모진 현실 앞에 그저 환상으로 굴절되었다. 


 

          

   (서귀포 언덕에 보존된 이중섭의 거주지. 오른쪽 작은 토방에서 네 식구가 지냈다)


 

 갈매기와 바람의 기척을 회화의 언어로 그려보고 싶었을 것이다. 바다가 토해내는 찰나의 모습들을 화폭에 간직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배고픔을 견뎌내야 하는 인생살이는 예술과 병존할 수 없는 역설이었다. 그에게는 종이도 물감도 팔레트도 없었다. 사랑하는 마사코의 고단한 삶은 현실의 포로가 되어가고 어린 목숨들은 숨이 찼다. 그럼에도 이중섭은 한사람이 지니고 다녀야 할 최소한의 품격을 잃지 않으려 무던히 몸부림쳤다.

 못 먹이는 애비의 미안함을 달래고자 그린 그림들이 군동화(群童畵)와 복숭아였다. 아이들 생각에 목이 메어 담배 갑 은박지에 송곳으로 눌러낸 ‘하얀 별을 안고 가는 아이’ 는 대향의 슬픈 인생이 스며들어있다. 

 동물이 등장하는 명화는 수없이 많다. 언젠가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오래 발길을 붙들었던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짚시여인과 사자’ 같은 그림이 매력적이다. 화가의 메타포 이상 그 어떤 강렬함이 발산되는 느낌이므로. 이중섭의 소를 민족적이며 영웅적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찬찬히 뜯어보면 그의 소는 굴욕과 억압 속에서 신음하는 식민지 조선의 소였다.

 소의 말/높고 뚜렷하고/참된 숨결/나려나려 이제 여기에/고웁게 나려//두북두북 쌓이고/철철 넘치소서/삶은 외롭고/서글프고 괴로운 것/아름답도다 여기에/맑게 두 눈 열고/가슴 환히/헤치다.

 움직일 수 없었다.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눈으로 마음으로 반복했다. 초막집 헛간에 보존된 서러운 방. 1952년 피난살이에 지쳤을 중섭이 어느 날 밤 써 붙인 '소의 말' 이 가슴을 때린다. 굶주림과 그리움 끝에 맞은 죽음, 쓸쓸했던 운명 뒤에 달려온 사촌이 발견해 지금까지 전해오는 단가다.


 

           

  (이중섭의 대표작.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 1층 벽 전면에 배경그림으로 장식돼 있다)
 

 

 그의 소는 격렬했다. 굵은 선에서 용틀임하는 골격의 절도가 살아있는 소를 끌어냈다. 도쿄 유학시절 일본에서 그린 소는 뼈만 앙상했었다. 소는 소였지만 한국의 소가 아니었다. 소의 커다란 눈망울에 맺힌 그렁그렁한 슬픔에는 약탈당한 조국이 담겨있었다. 무거운 짐수레를 끌고 가는 소는 언제나 식민지 소년을 멈추게 했다. 살아있는 날 온전히 주인을 위해 근면하게 일하고 죽어서는 뼈와 가죽까지 모두를 남겨주는 소. 인간의 울타리 안에 공존하면서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영험한 동물이다.

 평양 오산학교 시절 그는 들판의 나가 소 앞에서 멍하게 하루를 보내곤 했다. 보고 또 보고 천만번 살펴야 소가 머릿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몸속에서 발효되고 육화된 소 한마리가 비로소 하나의 조형으로 캔버스에 옮겨질 수 있었다. 소를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가득 샘물이 차올랐다. 물은 넘쳐흘러 그의 온몸을 적셨다. 그의 육체가 탄화된 형상으로 소가 남았던 것은 아닐까.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밑바닥을 채워야 한다. 밑바닥 없는 그림은 시간이 지나면 퇴색한다. 눈앞에 보이는 사물을 사물자체로 그린 건 그림이 아니다. 그 속을 그 안에 들었을 아픔이나 외로움을 언어가 아닌 그림으로 표출해내는 것이 회화다. 진정한 예술은 철학이나 도덕, 인생이 지닌 온갖 환희와 슬픔의 무늬를 재현하는 거다”

 어디 그림뿐이겠는가. 문득 돌아보면 산다는 것 전부가 오롯이 밑바닥을 채우고 그 안에 베어있는 고독과 그리움을 밀쳐내면서 세상속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슬픔과 분노와 기다림의 온갖 무늬가 낙인으로 찍혀 인생을 짓누르더라도 한사람의 품위를 잃지 않고 가야하는 길. 그 묵묵함이 소와 인생의 접점을 무채색으로 합치는 경계. 그 경계를 이중섭은 짧은 인생동안 화폭에 남기고 떠났다. 구름이 많아진 하늘은 바다를 덮고 이내 서귀포를 황혼속으로 가둬버렸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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