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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교정상화 50년. 야스쿠니

김경한 justin747@cstimes.com 기사 출고: 2015년 01월 05일 오후 2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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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5

 

 

국교정상화 50년. 야스쿠니


 

동아시아를 강타한 겨울 한파는 도쿄도 예외가 아니었다. 싸늘한 한기가 가득 스며드는 겨울의 중심에 모든 것이 움츠러들어 생명은 침묵중이다. 오직 한곳 야스쿠니만은 인파가 끓이지 않았다. 우경화의 트랜드인가. 보통은 비수기인 섣달 정초에도 추위를 가르고 신사를 보기위한 열도사람들의 행렬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도쿄 한 복판 치요다(千代田), 일왕이 거주하는 황궁의 북쪽 야스쿠니 모습은 예전 그대로다. 도리이(鳥居) 앞에 섰다. 우리네 홍살문 같은 모양의 신사 표시는 언제 봐도 기묘하다. 불결함과 신성함을 구분 짓는 경계. 8만개가 넘는 일본 전역의 신사(神社)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곳이다. 과거를 기억하는 선 안쪽으로 들어서서 현재를 고민하는 이들의 표정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모두 경건함을 유지해달라는 안내문들이 조금은 부담스럽다.

평화로운 나라를 의미하는 야스쿠니(靖國). 그들에게는 평화로울지 몰라도 이웃나라 사람들에게는 역사 갈등의 현장일 뿐이다. 1868년 성공한 메이지 유신을 기리기 위해 왕궁 옆에 만든 분향소가 야스쿠니의 유래다. 도쿠가와 막부에 대항해 죽었거나 서남전쟁 등에서 숨진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함이었다. 3500명의 위령을 모아 예를 갖춘 것이다.

그렇게만 해왔으면 오늘의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패전한 일본은 이곳에 무려 264만 명의 전몰자를 모았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사변, 태평양전쟁. 침략으로 얼룩진 그들의 근현대사가 사자(死者)들을 통해 고스란히 집합되었다. 1978년에는 이미 처형된 2차 대전 A급 전범 14명까지 합사했다.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7년 후(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수상은 전격적으로 야스쿠니에 참배했다. 국가최고 지도자로서는 처음이었다. 전쟁의 피해자인 한국과 중국은 경악했다. 된소리를 질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2000년 극우의 상징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 참배, 2001년 고이즈미 수상 참배, 2013년 12월 아베 수상 참배, 춘추대제와 패전일(8월15일) 각료들의 집요한 발걸음은 아직도 이어지는 중이다. 전쟁의 상처가 엄연한 동아시아의 복잡한 사정은 그들의 치기와 아집에 가려지고 있다. 

 


하긴 꽃다운 나이에 전쟁터로 끌려가던 소년들이 다음 세상에 야스쿠니에서 만나자고 했다던가. 죽음의 공포에 질려 떨고 있던 어린것들이 이곳을 거치면서 군국의 투사로 탈바꿈되었다. 성소로 승격되는 순간이다. 그리하여 무수한 생명들이 총알받이로 스러져갔다. 종교이상의 신권을 부여받은 천황의 스토리를 가슴에 안고 무모한 생을 마감한 이들의 영혼터다. 군국주의 망령이 절정을 달리던 때의 대칭점이다. 전범들의 시나리오에 이끌려간 청춘들의 애달픈 무대다.

말라버린 잔디밭 사이로 제로센 전투기가 보였다. 하와이 진주만을 폭격했던 도구들이다. 가미가제 특공대의 동상이 우뚝하다. 그 옆에는 일본육군의 아버지로 통하는 오무라 에키지 동상이 단단하다. 전함 야마토의 모형이 뒤쪽에 서 있다. 실물크기 포탄들이 반질반질하게 닦여서 진시중이다. 군마와 군견 청동상까지 보고나면 거대한 전쟁우상종교에 갇혔다 풀려난 느낌이다.

국제여론에 눈 귀 닫아걸고 만든 전쟁박물관 유슈관(遊就館.고결한 인물을 본받는다는 의미)은 또 어떤가. 군국 미화 이야기로 가득하다. 10만점 소장품 가운데 5천점만 일반에 공개중이다. 흰 비둘기가 야스쿠니의 상징이라니 아이러니다. 휘두르고 보여주는 자와 당하고 보는 자의 시선이 엇갈린다. 포개질 수 없는 무늬다.

이것이 일본이다. 일본은 일본일 뿐이다. 일본은 한국이 아니고 중국이 아니다. 역사를 반성하라고 촉구했지만 하지 않겠다면 어쩔 도리가 없다. 그렇다고 여기서 관계를 멈출 수는 없다. 대신 그들은 왜 그렇게 생각하고 어떻게 환경이 달라졌는지를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일본내각부가 여론조사를 했다. 한국에 친밀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응답이 66.7%에 달했다. 2011년 36%에서 2012년 58%로 뛰더니 잠깐사이 혐한감정은 두 배로 커졌다. 과거사 배상이 마무리 되었는데도 자꾸 배상을 요구하는 한국이 싫다는 것이다. 보수우익에 머물던 감정이 일반국민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야스쿠니를 나오면서 미국 하버드대 조지프 나이 박사의 조언이 떠올랐다. “지금 한국과 일본은 1930년대 이야기를 끄집어내 21세기 문제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있다. 양국은 이제 과거가 아닌 미래를 내다보기 시작해야 한다. 이 지역에 지난 70년 동안 침략행위가 없었는데도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에겐 몹시 억울하고 섭섭한 논리지만 그렇다고 흘려버리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부간 대립을 민간이 풀어나가는 방법은 없는지. 일본 지식인들의 주장처럼 야스쿠니에서 전범들을 분리해내 다른 추모시설을 만들수는 없는지,  아베의 우익폭주를 그들의 문제로 인정하고 쿨하게 대할 수는 없는지. 더 이상 우리가 분노하지 않고 변화하는 일본을 현상대로 인정해 주는것과 같은 노력들 말이다. 굴욕의 상처를 내밀고 원망해온 일본이 우리에게 익숙하다 해서 그것만 고집하면 다시 역사의 패배자가 될지도 모른다. 

올해 6월이면 한일 국교정상화 50년이다. 이제 민간이 나설때다. 정치의 강제보다 자발적 동의로 감정을 풀어내고 선동이 아닌 이성으로, 비난이 아닌 설득으로 이 해묵은 문제를 마주한다면 길이 없는 것도 아니다. 시민들의 힘으로 엮어낼 수 있는 소프트파워가 매개역할을 한다면 가능한 일이다. 대결과 완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려 하면 지난 세월처럼 피로감만 반복된다. 과거의 덫을 벗어나 공존의 이유를 함께해야 한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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