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행정의 망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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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행정의 망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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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5

 

 

전시행정의 망령들

  


376조원의 돈 잔치가 끝났다. 역사상 최대액수다. 그야말로 수퍼예산이다. 내년 한해 매일 1조씩을 써도 남는 돈이다. 현재 인구 4903만 명이 1인당 766만원씩을 내야 채워지는 숫자다. 3인가구라면 평균 2천 만 원 이상의 세금폭탄이 기다리고 있다. 이 돈으로 어쩔 수 없이 곳곳에서 또 불요불급한 잔치가 벌어질 것이다.

정치가의 운명은 대개 숫자로 좌우된다. 선거의 가치는 이 숫자의 후순위 배당이다. 되도록 큰 액수가 절대선이다. 남보다 나은 힘을 길러 그들을 누르고 많이 차지하면 영향력을 평가받는다. 거액일수록 박수소리가 더 요란하다. 예산폭탄을 터뜨리겠다며 선거판을 뒤집어버린 이도 있었다. 끌어오기만 하면 공짜 돈 이라는 인식이 출발점이다. 예산 빼오는 솜씨로 다음 당락이 결정되는게 현실이다.

출장길에 지나온 여수박람회장이 자꾸 기억에 밟힌다. 개장 2년이 지났지만 중앙정부의 엇박자 속에 향후 활용계획 자체가 표류중이다. 올해 예상적자액은 123억 원. 정부에서 빌린 3800억 원은 원금상황은커녕 이자도 못 내고 있다. 박람회장을 관리하는 재단은 민간 임대 같은 방법을 알아보겠다고 둘러대지만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벌써 두 번째 민간매각공고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박람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면 사후경제 효과액 36조 5천억원. 고용창출 효과 3만4천명. 2012년 여수박람회 당시 국토해양부가 내놓은 보고서다. 어떻게 이런 리포트가 나왔는지 허망한 개그다. 실익을 잘 따져보지도 않고 무리하게 유치한 국제행사의 어두운 그림자다.

'한건해온 전리품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선전한다. 적당히 눈치 봐서 돈 달라고 벌렁 드러눕는다. 여론이 들끓는다. 마지못해 중앙정부가 나선다. 막대한 국고를 축낸다' 전시행정의 망령이 춤추는 시나리오 대본이다.

한때 한반도에 경천철 사업이 유행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시장 군수들이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위해 저지른 황당사건들이었다. 수원, 용인, 의정부, 고양, 김해 경전철. 수천억원을 날렸거나 아직도 날리고 있는 중이다. 눈먼 예산이 주인공이다. 인천 월미도 해변을 연결하는 '은하 경전철'은 만화속 요지경 '은하철도 999' 에서나 가능했을 법한 블랙 코미디였다.

용인시민들은 참다못해 '주민소송단'을 꾸렸다. 수천여명이 연판장에 서명하고 응징하자고 나섰다. 1조원대의 피해를 낸 경전철 주역들을 심판하기 위해서다. 세금내고 표 찍어 준 것만도 억울한데 그들의 감언이설에 속은 분노가 못내 뻗쳐오르는 것이다. 예산을 낭비한 '나으리' 들을 끝까지 추적해 법정에 세우고야 말겠다는 각오다. 측은한 스토리다.

인천아시안게임, 대구 세계육상대회,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이어지는 지방관들의 어깨춤에 국민 모두가 볼모로 잡혀있는 모양도 안타깝다.  올림픽 치러봤고 월드컵까지도 맛봤는데 왜 이렇게 엄청난 돈을 써가면서 전시성 푸닥거리를 반복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이미 써버린 돈이야 그렇다 치고 남은 평창이 문제다. 살림살이 빤한 강원도가 조 단위 경비를 어떻게 마련할지 궁금하다. 대회를 준비한다고 미리 추진한 용평의 알펜시아 개발부채만 1조원을 넘었다. 강원개발공사가 부도지경이다. 아직 착공단계인 경기장도 여러 개다.

이 와중에 IOC 바흐 위원장은 귀담아 들을만한 발표를 내놨다. 평창과 도쿄의 동. 하계 올림픽 경기장 교차사용 제안이다. 2주간 대회가 끝나면 폐허만 남는다는 썰매종목(봅슬레이, 루지. 스케레톤)은 일본에서 열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했다. 한일 교차대회가 되면 2002년 월드컵 이후 모처럼 민간교류도 물꼬가 트일 것이다. 정치로 막힌 양국관계를 올림픽으로 허물 기회일수도 있다. 

대회만 하면 지역이 대박 날거라던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은 40년 빚 청산 작업으로 주민들의 신물을 뺐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아시아 최초로 유치했다던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은 대부분의 경기장이 흉물로 남았다. "돈 때문이라면 올림픽 뒤 경기장을 헐어 낼 테니 평창단독으로 치르게 해달라"  (최문순 강원지사). "한일 공동개최는 불가능한 일이다" (조양호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하지만 자존심을 내려놓을 때가 아닌가 싶다. 러시아 소치같은 불행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국민정서상 어렵다는 정부의 태도는 여전히 과거지향적이다. IOC 이전에 강원도가 스스로 경기장 교차사용을 고민해봤더라도 크게 손해날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적자 대회의 악순환은 이제 정리할 때가 되었다. 명분과 전시행정은 포플리즘의 또 다른 포로다. 그토록 뼈저린 경험을 하고서도 행사와 업적에 목을 매는 리더는 이미 21세기형 리더가 아니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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