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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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성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
  • 이미주 기자 limiju@cstimes.com
  • 기사출고 2014년 11월 24일 07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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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 함께 잘 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 지향해야"

   
 

[컨슈머타임스 이미주 기자] "제가 '한국 자본주의'를 쓰게 된 이유는 진심으로 분노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그를 분노케 했을까. 그는 담담한 어조로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기형적 구조와 불평등, 양극화 등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최근 한국의 자본주의를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한 책 '한국 자본주의'를 출간한 장하성 교수는 대안이 아닌 구체적인 처방이 시급하다는 데 힘을 실었다. 

한국 사회가 처한 상황을 천천히 톺아보고, 따져 묻고, 고쳐 쓴 그의 값진 열정이 고스란히 기자에게 전해졌다.

한국 자본주의를 '고장 났다'고 표현하는 그에게 경제위기 타개 방법론을 직접 들어봤다.

◆ "한국 사회 '새 논쟁' 필요해…치열한 논쟁으로 지혜 모아야"

Q. 최근 발간된 '한국 자본주의'가 많은 화제를 낳고 있다.

== '한국 자본주의'는 저의 첫 책입니다. 이 책에 저는 굉장히 오랜 기간 고민해 온 내용을 담았습니다. 고민을 넘어서 오랜 시간 분노했던,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적어봤습니다.

한국사회의 잘못된 부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논쟁하고 의견을 내는데도 불구하고 이 같은 논쟁들이 사회를 변화시킬 힘의 방향성으로 가지 않고 대립적 관계로만 치닫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우파와 좌파, 진보와 보수에 관계 없이 '목소리 큰 소수'가 장악하는 구조가 되면 객관적인 목소리를 내야 하는 사람들이 침묵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달라지길 기대했지만 한국 사회에 변화는 없었습니다. 이제는 '내 스스로의 사고에 책임질 수 있는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쓰게 됐습니다.

Q. 책을 집필하면서 염두에 둔 부분이 있나.

== '한국 자본주의'를 쓸 때 3가지 원칙을 두고 저술했습니다. 1번째는 '철저하게 한국적 입장에서 쓸 것'입니다. 한국에 적용되지 않는 논쟁은 배제했습니다. 폐쇄적, 배타적, 국수적 등의 입장이 아닌 '우리의 현실'에 기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2번째는 '객관화되지 않은 사실은 배제할 것'입니다. 통계로 뒷받침되거나 논문 등에 근거한 분석만 담았습니다. 3번째는 '한국의 미래에 대한 가치지향적인 글을 쓸 것'입니다.

Q. '한국 자본주의'가 담고 있는 의도가 있다면.

==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많은 사람들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혜를 모으는 것은 치열한 논쟁에서 비롯되며 비판적 사고도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는 '긍정'을 강조합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라고 말이죠. 교육도 틀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비판의식입니다. 비판적이지 않은 사람은 창의적일 수 없습니다.

한국 사회는 시대적 가치와 화두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새 논쟁'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새로운 논쟁이 시작되길 원해 많은 부분을 직설적으로 표현했습니다.

◆ "기업은 '분배'의 주체…고용의 질 높아져야"

Q. 소득불평등이 가장 주요한 사회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 소득불평등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절대적인 문제점입니다. 분배가 잘못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의 가장 기본인 '노동에 대한 분배'가 지난 17년간 급격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기업의 이윤추구 목적은 '분배'여야 하고 기업의 수익은 궁극적으로 '분배를 위한 것'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정책'을 통해 소득불평등이 해소됐습니다. 모든 임금은 정부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임금통제'가 그것입니다. 자본주의의 틀 속에서 발생하는 불평등한 것은 정책을 통해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기업의 이윤추구 목적이 잘못됐다는 말인가.

== 기업의 이윤추구는 사회적 가치와 일치해야 합니다. 때문에 기업에게 "이익을 왜 추구하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이익을 많이 내서 무엇을 할 지, 어디다 쓸 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 자체는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벌어들인 이윤을 어디에 쓰려고 하는 지가 중요합니다. 한국 기업은 목적 없이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정부는 재분배의 주체고 분배의 주체는 기업입니다. 기업은 소비의 주체가 아닙니다. 기업의 돈은 봉급, 세금, 이자, 배당 등의 형태로 분배되기 위해 존재합니다. 경제는 성장하고 있는데 성장의 결과는 노동이 아닌 기업에게만 가고 있습니다.

   
 

Q. 고용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 임금 수준이 낮은 것이 문제입니다. 임금상승률은 경제성장률에 미치지 못하고 고용의 질은 임시 고용 등의 형태로 낮아만 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50년 전의 프랑스, 65년 전의 미국보다 일을 많이 하지만 임금수준은 낮습니다. 경제는 성장해가는데 양극화는 심해지고 있는 거죠.

때문에 저임금문제가 논쟁이 돼야 합니다. 모든 문제를 노동과 자본의 대립으로 봐선 안됩니다. 자본의 탓으로 모든 것을 돌리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부자증세로 지금의 불평등을 모두 해소할 수 없다고 봅니다. 전체적인 구조상 선진국에 비해 한국의 부자 비중은 터무니없이 적기 때문이죠. 새로운 산업으로 성장하겠다 하는데, 성장은 구조적으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선제돼야 합니다.

Q. 최저임금을 올리면 불평등이 해소될까.

== 미국의 경우 서비스업이 급속히 확대되며 변화된 산업구조로 인해 소득불평등이 생겨났습니다. 한국은 기업간의 양극화가 문제입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 말이죠.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종속관계를 보입니다. 하청에 재하청, 재재하청까지 있죠. 자동차 산업을 예로 들었을 때 최종 생산하는 현대차와 부품공급업체간의 임금격차는 60% 정도입니다. 이 같은 기업의 '기형적 생태계 구조'가 임금불평등 문제를 키우고 있는 것입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고용의 질의 차이가 만들어낸 문제도 심각합니다. 비정규직을 없애면 고용 안정과 임금 상승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라고 봅니다. 2차, 3차 재하청 기업에 대한 분배구조를 바꾸고 고용의 질을 높이기 위해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돼야 정의로운 자본주의 실현"

Q.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신자유주의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있다.

== 자본을 인정하고 있는 체제에서 신자유주의를 해석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종종 신자유주의는 세상 모든 악의 근원으로 비춰지는데, 과연 없어지면 세상이 좋아질까 의문이 듭니다.

일각에서는 민영화 때문에 세상에 망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나라는 현재 민영화한 것이 몇 개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실업, 노동 문제는 민영화 때문에 있는 것처럼 논의되는데 구체적인 사례는 없단 거죠.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신화가 한국에서 너무 왜곡돼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Q.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실현하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하나.

== 함께 잘 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가 실현되려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해야 합니다.

한국의 시장경제체제에서 자본주의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경쟁과 소유, 균형적 분배와 함께 '현실적' 대안이 필요합니다. 현실적 대안이 없으면 인간답게, 정의롭게 바뀔 수 없습니다.

Q. 끝으로 한국 사회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 한국에 '정의 논쟁'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정의의 반대말은 불의입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정의의 반대말은 '의리'입니다. 정의로워지면 '의리 없는 놈'이 된다는 거죠.

수많은 국민들이 마이클 샌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를 샀습니다. 저는 그것이 지난 대통령 선거 때 경제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연결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으로 이어지지 않아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자본주의를 대체할 체제가 없다면 이 체제가 우리 모두를 위한 '정의로운 체제'가 되도록 바꿔 나가야 합니다.

◆ 장하성 교수는?

고려대 경영학과 학사, 미국 알바니 뉴욕주립대 석사,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박사를 거쳐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재무학회 회장,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 경제개혁연대 운영위원장, 라자드지배구조네트워크 이사, 정책네트워크 내일 소장, 세계은행 방문학자 및 컨설턴트, 경제협력개발기구 컨설턴트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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