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과자로 "사랑해" 말 대신하는 씁쓸한 시대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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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과자로 "사랑해" 말 대신하는 씁쓸한 시대 '유감'
  • 최미혜 기자 choimh@cstimes.com
  • 기사출고 2014년 08월 18일 07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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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최미혜 기자] "사랑해"

사랑을 막 시작한 연인이 아니고서야 상대방을 눈 앞에 두고 하기가 괜히 쑥스러운 말이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에게 "사랑해", "힘내세요" 같은 따뜻한 말을 입으로 전한 게 언제인지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말로 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툰 기자 같은 소비자들을 꿰뚫어보기라도 한 듯 기업들이 '말'을 담은 제품을 내놓고 있다.

평소 상대에게 전하기 어려운 말을 제품 포장이나 라벨에 담은 '메시지 마케팅'이다.

코카콜라는 제품 라벨에 메시지를 담은 콜라를 선보였다. '잘될거야', '사랑해', '최고야'라는 말이 눈에 띈다. 평소 하지 못했던 말을 콜라로 대신 하라는 것.

롯데제과의 비스킷 '마가렛트' 포장에는 '사랑해', '소중해' '행복해' 등 5가지 메시지가 적혀있다. 소비자가 직접 하고 싶은 말을 적을 수 있도록 작은 편지지 형태의 빈칸도 마련됐다.

"말로는 잘 못하니 이렇게라도 마음을 전하려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파고 든 것이죠." 식품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진심 어린 말을 입으로 주고 받는데 인색해진 세태를 반영한 것 같아 어쩐지 씁쓸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산하 참교육연구소의 '2014년 어린이 생활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방과 후 가족과 대화하는 시간이 '30분 이하'인 초등학생이 전체의 52.5%에 달한다. 초등학교 5·6학년생 19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온라인 교육업체 휴넷이 기혼 직장인 965명을 대상으로 부부간 대화시간을 묻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30분~1시간 미만'이 42.7%로 가장 많았다. '30분 미만'도 32.0%였다.

실제 가족들끼리도 말을 잘 하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말하는 일이 줄어들다 보니 따뜻한 말 한마디를 주고 받는 일은 크게 마음 한 번 먹고 해야 할 만큼 어려워질 수 밖에.

'말'은 '글'과는 다르다.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쓰는 음성 기호가 '말'이다.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목구멍을 통해 조직적으로 나타내는 소리가 '말'이다.

휴대전화로 주고받는 메시지나 이메일에 담긴 글로도 정보나 감정을 전달할 수는 있다. 포장에 '사랑해'라는 글자가 적힌 과자로도 마음을 전할 수는 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을 뜨끈하게 만드는 힘은 어딘가 부족하다. 

목소리, 눈빛, 표정이 더해지는 말의 힘이다. 

과자나 콜라에 슬쩍 얹은 말이 아닌, 체온이 담긴 진짜 말이 그리워지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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