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집 밥' 사라진 밥상, 치유와 정성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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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집 밥' 사라진 밥상, 치유와 정성이 절실하다
  • 한행우 기자 hnsh21@cstimes.com
  • 기사출고 2014년 07월 21일 07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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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한행우 기자] "집에서 한 상 차려먹는 것 자체가 거창한 행사가 돼버렸죠. 그러니 누가 식기세트를 사겠습니까?"

국내 굴지의 도자기업체 고위 임원이 고충을 털어놨다. 최근 도자기업계가 고전하는 주된 원인으로 '집 밥'과 멀어진 식문화를 꼽은 것이다.

듣다 보니 고개를 주억거리게 됐다. 요리가 없는 주방에서 구색 맞춰 구입한 그릇은 부피가 큰 짐에 불과하다.

국내 업체들이 주춤하는 사이 포트메리온, 빌레로이앤보흐 등 고가의 유럽산 식기들이 주부 소비자들의 마음을 휘어잡고 있다. 색상과 무늬가 면면이 화려한 게 특징이다.

된장찌개, 열무김치, 시금치 나물… 온통 불그죽죽, 푸르죽죽한 우리 고유의 음식들과 궁합이 맞을지는 미지수. 정교하게 그려진 꽃과 곤충 문양 위의 쌀밥을 생각하면 구미가 썩 당기지는 않는다.

"관상용이죠 관상용."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그림을 모으듯, 주방을 돋보이게 할 '컬렉션'으로 수집한다는 얘기다.

그릇이 장식용으로 '전락'한 것인지 예술품으로 그 위치가 '격상'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한가지 분명한 건 우리들의 주방에서 그릇과 함께 '밥 냄새'도 자취를 감췄다는 사실이다.

집 밥. '보약'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 밖에서 먹는 밥이란, 아무리 야무지게 챙겨먹어도 어딘가 허기지다. 집 밥을 공유하는 '밥상'에서 가족간 소통과 예절이 출발한다 해서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 요즘의 우리는 시간에 쫓겨 '2분 조리밥'이나 편의점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게 다반사다. 치킨, 피자처럼 열량은 높되 영양은 없는 음식으로 저녁과 야식을 대신하기를 즐긴다.

편리함과 속도를 얻은 대신 잃은 것도 많다는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한 그릇의 새 밥을 짓기 위해서는 공을 들여야 한다. 쌀을 씻고, 불리고, 뜸을 들이는 시간까지 더해 '인내'로써 완성되는 게 밥이다.

목숨의 근간을 이루는 음식에서 기다림의 미학이 사라지면서 생활에서도 인내와 여유가 사라져가는 게 아닐까. 쉴틈없이 달려온 하루의 끝에 정성으로 지어낸 집 밥만한 것이 있으랴. 

'잘 먹는' 일이야말로 잘 사는 일의 전제이며 근간이다. 밥상이 피폐해지면 하루가 피폐해지고 그런 하루들이 모이면 사람을 휘청거리게 만든다. 

오늘만큼은 쌀을 씻기 위해 찬 물에 손을 담그는 수고로움을 느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식탁 위에 따끈한 쌀밥이 돌아오면 그릇도 본래의 소임을 되찾을 것이다. 국내 도자기 업체들도 그제야 한 숨 돌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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