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자살골' 넣고 떼쓰는 한맥증권 '레드카드' 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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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자살골' 넣고 떼쓰는 한맥증권 '레드카드' 줘야
  • 김일권 기자 ilkwon@cstimes.com
  • 기사출고 2014년 06월 16일 07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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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김일권 기자] 축구 경기에서 실수로 자살골을 넣은 팀이 무효라며 억지를 부린다. 그런데 심판은 억지를 부리는 팀이 아닌 상대팀 선수에게 레드카드를 내민다.

다소 황당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는 일이 현재 우리나라 금융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자살골을 넣은 팀은 한맥투자증권, 심판은 금융감독원이다.

지난해 마지막 선물옵션 만기일이었던 12월12일. 파생상품의 하나인 '코스피200옵션'을 자동으로 거래하던 한맥투자증권 시스템에서 주문실수 사고가 발생했다.

시스템 오류로 인해 당시 시세보다 훨씬 싼 가격에 매도 주문이 나왔다. 때를 놓치지 않고 몇몇 '선수'들이 헐값에 나온 '물건'을 사들였다. 잠시 후 시스템에서 반대매매가 나왔지만 2분 뒤 체결된 매수가격은 팔았던 가격보다 한참 위였다.

찰나의 '작은' 실수로 인해 한맥증권이 입은 손해는 자그마치 462억원. 자본금이 200억원대에 불과한 소형 증권사 하나를 없애기에 충분한 액수다.

돈 갚을 능력이 안 되는 한맥증권을 대신해 한국거래소가 나서 증권사들이 모은 손해배상기금으로 결제대금을 지불했다.

물론 공짜는 없다. 한국거래소는 이 돈을 한맥증권으로부터 받아내기 위해 구상권을 청구했다. 갚지 못하면 한맥증권은 파산이다. 아직 돈을 갚아야 할 기한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다행히 '주문실수'로 이득을 봤던 일부 국내외 투자자들이 이익금 가운데 일부를 상환했다. 하지만 손해금 가운데 대부분인 약 360억원의 이득을 본 것으로 알려진 외국계 헤지펀드 'C사'는 여전히 한 푼도 돌려주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한맥증권은 사고 발생 6개월이 지난 현재 여전히 C사와 협의를 시도하고 있다.

국내 증권사 하나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던 금감원은 하나라도 꼬투리를 잡아 거래를 무효화하기 위해 조사에 나섰다. 이번 주문실수 사고에 불공정거래 혐의가 있다고 판단, C사를 대신해 주문을 담당했던 국내 증권사에 최근 주문기록을 전부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하지만 이 같은 압박에도 꿈적 않는 C사에 화가 난 금감원은 결국 국내시장에서 퇴출시키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금감원은 C사와 거래중인 증권사 3곳에 앞으로 신규주문을 받지 말라고 요청했다. 강제는 아니지만 금감원의 지시를 어겼다가 어떤 불상사가 벌어질 지는 불 보듯 뻔하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금감원이 시장의 질서를 무너트리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감원이 이번 사고를 조사하며 제기한 혐의 가운데 아직 확인된 '팩트'는 없고 의혹만 가득한 상황에서 국내증권사를 살리기 위한 '섣부른 편들기'였다는 것.

존망의 위기에 놓인 국내증권사 사정을 모른척하는 C사가 야박하다고 비난할 수는 있지만, 시장의 규칙을 어기지 않았다면 강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이 같은 금감원의 결정에는 한맥증권의 압박이 상당부분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한맥증권은 주문실수 사고에 대한 당국의 대응이 허술해 손해를 키웠다며 최근 한국거래소와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

증권시장은 소위 '선수'라 불리는 투자자들이 시합을 벌이는 '경기장'에 비유되곤 한다.

선수들은 이미 만들어진 룰에 따라 경기에 임한다. 룰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던 것을 미리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룰을 만드는 사람들의 책임이지 룰에 따라 열심히 경기를 치른 선수들의 잘못은 아니다.

한맥증권을 꼭 살려야 한다면 금융당국은 시장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한도 내에서 대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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