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를 향한 직격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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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를 향한 직격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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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0

 

군주를 향한 직격탄

 

 

1628년 여름 광주(廣州)의 선비 이오(李晤)가 상소했다. 이오의 소(疏)는 왕이 당면한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 조정은 물론 지방관하에게도 의견을 내라고 요청한데 응한 것이다. 평소 임금에게 고언하고 싶었으나 무엄한 신하로 몰려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구언(求言)에 답한 응지소(應旨疏)였다. 이오의 소는 조정의 문제를 10가지로 지적하고 항목마다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
 
당시 인조정권은 무능했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용상을 차지하는데는 성공했지만 갈팡질팡 북방 외교로 명(明)나라의 군신요구와 후금(後金)의 형제요구를 다 들어줘야 할 우스운 상황에 내몰렸다. 그뿐인가. 인조반정 공신인 장수 이괄(李括)을 변방 하찮은 벼슬로 내쳤다가 난(亂)을 당해 도성이 불타고 자신은 피난길에 올라야 하는 치욕을 당했다. 뒤이은 정묘호란은 아우국의 예를 빨리 갖추라는 후금의 협박으로 이어져 국가적 망신살이 뻗친 사건이었다.
 
이 바람에 양쪽에 바칠 공물(은, 면포, 인삼)이 필요했다. 방법은 당연히 징발이었다. 안 그래도 인심이 흉흉해져 있는 백성들에게 관가의 피를 짜는 듯한 납공강압은 그 원망이 하늘을 찔렀다. "아침에 저녁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집안에 빚쟁이가 가득하다". 성리학자 김신국이 묘사한 그 해 조선의 곳간형편이었다. 한해 세출로 국가의 제사를 지내고 백관의 녹봉을 주기도 벅찰 지경이었던 것이다.
 
이오는 우선 조정에서 하는 일이 대체적으로 사리에 맞지 않는다(處事乖當)고 포문을 열었다. 민심을 수습하고 군역을 줄여야 할 판에 없는 양곡을 쥐어 짜내는가 하면 특산물을 할당해 동네마다 채워내지 못하면 고을 수령에게 끌려가 한 바탕 매타작을 당해야 했다. 이런 일들이 사리에 어긋난다는 소를 올렸으니 전제왕권 분위기하에 목숨을 건 행위였다.
 
상소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인조의 아킬레스건을 제대로 건드렸다. 전하가 직언을 싫어하여 신료들이 입을 닫고 말조심하는 분위기가 널리 퍼져 있다(言路杜塞). 벼슬을 노리는 자들은 밤낮으로 도성을 기웃거리고(賂?公行), 막중한 국가대소사를 모두 하잘 것 없는 인물들에게 맡기고 있어(亨社不潔) 수심과 한탄이 깊어가니 통촉하시라는 내용이다.
 
비슷한 시기에 가평군수 유백증(兪伯曾)은 결정타를 날렸다. "할 말은 많으나 나라의 흥망이 군덕(君德)의 득실(得失)에 달렸습니다. 전하께서는 지나치게 자신하여 남을 따르는 점이 부족하고, 의심이 많으면서 이기기를 좋아하는 단점이 있으며, 인자함은 충분하나 위엄과 과단성이 부족하고, 근심하고 애쓰는 것은 간절하나 실덕(實德)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안으로는 주석(柱石)처럼 의지할 만한 신하들이 없고 밖으로는 외적을 막는데 간성(干城)처럼 맡길만한 인물이 없습니다. 인심이 원망하고 등을 돌려 역변이 잇따르고 적폐가 고쳐지지 않습니다. 나라의 위급함이 마치 끓어지려는 실끈과 같은데 신(臣)은 광해(光海)가 아직 죽기 전에 종사가 먼저 망해 천고의 웃음거리가 될까 두렵기만 합니다".
 
인조정권에 대한 유백증의 비판과 경고는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이들의 상소직후 인조는 각도의 감사들에게 "수령들은 엄격하게 단속하여 굶어죽는 백성이 없도록 하라. 만약 그런 사태가 나면 용서치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자신은 하늘의 천자처럼 방관하고 지방관들에게만 민심을 수습하도록 일갈했지만 추상같은 어명은 신료들의 모르쇠로 처참하게 뭉개져 결국 병자호란을 맞고 말았다.
 
요순시대의 현명하고도 어진 군주를 닮고자 했으나 그것을 실천으로 옳기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인조에 대한 후세 사가들의 평가다.
 
역사의 기억은 충돌한다. 4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군왕의 길은 다르지 않다. 먹고사는 방법만 달라졌을 뿐 머리와 정신의 가지런함은 그대로다. 지도자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바라는 조선의 공개상소가 답답한 오늘 우리의 가슴을 친다. 목숨으로 잘못을 고하고 군주의 아집과 오판을 바로 잡으려는 신하들의 꼿꼿함이 그립다. 대통령의 말씀을 받아 적기에 여념 없는 참모들 너머로 역사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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