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골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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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stimes.com
2014.05.12

 

복합골절

 

 

골절은 뼈가 부러진 모양을 말한다. 단순골절은 문제된 곳만 싸매면 쉽게 회복된다. 치료기간도 빠르고 재활도 쉽다. 하지만 복합골절은 상황이 다르다. 골절부위가 많고 복잡해서 깁스 후 과연 완치는 될 것이며 다시 제 기능을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발가락 하나만 삐어도 불편한 게 물리적 대사의 이치인데 무릎이 파열되고 어깨뼈 탈골에 허리 척추까지 내려앉았다면 이는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한국은 지금 복합골절 상태다.

골절의 원인도 중요하다. 태풍이나 교통사고처럼 어쩔 수 없는 재난으로 생긴 것인지 아니면 멀쩡할 수도 있었는데 사람들의 부작위와 미필적 고의로 저질러졌는지를 가려내어 정밀한 수술을 병행해야 한다. 처방은 비슷하지만 원인에 따라 대처방법은 180도 달라진다. 그럴 수 있었느냐와 어쩔 수 없었느냐의 차이는 매우 크다.

골절의 원인을 두고 모두가 끓어오르고 있다. 이유를 찾기 위한 백화제방 백가쟁명이 난무한다. 리더십이 무너졌다고 땅을 치고 감춰졌던 이기주의의 본색이 드러났다고 혀를 차기도 한다. 불신과 냉소에 무관심이 판쳐온 정신적 치부가 발가벗겨졌다며 얼굴을 감싸 쥐기도 하고 남이야 어찌됐든 나 혼자만 잘살면 그만으로 살아온 극단주의 업보로 진단하는 이들도 있다.

확실한 것은 숫자로 포장되어온 이른바 선진표 공치사가 허구였고 아직은 갈 길이 먼 이야기였음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잘살아 보자고 허리띠 졸라매고 경제만 일구면 좋은 세상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배가 좀 고파도 민주화가 이뤄져야 참세상이라고 믿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밥 먹고 살만하고 이만큼 자유로우면 수준 있는 나라라고 믿었는데 우리가 바라는 참세상은 아직 세월호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안 뒤 사람들은 집단 우울증에 갇혀 있다.

경제혁명, 민주혁명에 골몰하는 동안 의식혁명은 우리의 관심이 아니었음을 이제 고백해야 한다. 낮은 등급의 국가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생각을 바꾸는 일임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고 솔직히 털어놓아야 한다. 그런데 서로 손가락질만 하다가 아주 서서히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고 또 다시 망각의 늪으로 빠져 들까봐 그게 가장 두렵고 겁나는 일이다.

팽목항 소식이 조금씩 사라지고 자식을 가슴에 묻은 이들의 통곡이 멀어지면 잠시 달궈졌던 의식혁명, 도덕재무장 운동, 국가개조의 공감대가 도로아미타불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어서 하는 말이다. 이 불씨를 이어받아 릴레이 개혁을 맡아줘야 할 이 나라 리더들이 제대로 뛰어줄지도 미지수고.

프란시스 후쿠야마(일본출신 세계적 사회학자)가 지적한 '트러스트'의 중요성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신뢰가 부족한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몇 배의 비용을 치러야 시스템이 돌고 정상 작동될 수 있다는 사실을. 국가수준이 신뢰지수에 비례하는 이유가 있었다. 트러스트가 약해져 위로부터 불신이 싹트면 아래로부터의 저항은 필연이었음을 수많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아이들을 구하다 함께 떠난 교사의 가족들이 위로금을 한사코 거부했다는 소식에 눈물이 돈다. 정부 돈으로 장례식을 치루면서 가장 싼 수의를 고집했다는 그 절제가 가슴 아프다. 미안해하지 말라며 국민성금을 장학금으로 돌리자고 제안하는 유가족들의 마음이 처연하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하는 소식들이다. 아픔은 보듬고 잘못은 혹독하게 매질하면서 우리 스스로를 복합골절의 늪에서 건져 올려야 하지 않겠는가.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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