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 대충 살아온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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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 대충 살아온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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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stimes.com
2014.04.23

 

빨리빨리 대충 살아온 문화

 

 

1987년 6월 거제도 해금강 선착장. 유람선 극동호는 선상이 사라진 채 끌려오고 있었다. 타다 남은 시신들만 지독한 냄새 속에 나뒹굴고 포구는 통곡으로 변했다. 사고선박은 폐차 처분된 자동차 엔진을 달고 있었다. 구명조끼는 도난방지 때문에 밧줄로 꽁꽁 묶여 있었고 소화기는 녹슬어 무용지물. 술 마시고 춤추던 난장판 선상은 순식간에 번진 불로 지옥이 되었다. 40명도 무리인 목조선에 86명이나 올라탔고 35명이 저 세상으로 갔다. 한밤중에 달려온 가족들의 분노가 파도를 타고 일렁였다. 취재로 정신없었던 하루, 막소주로 손을 씻고 늦은 밤 허기를 달랬다. 소득 4천 달러를 밑돌던 때의 일이다.
 
세월이 흐르고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선 나라가 되었다는 자부심도 잠시. 잇따른 대형 참극은 이번에도 우리를 비껴가지 않았다. 세월호에서 그 완결판을 보는 듯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공통점은 기본을 철저하게 무시했다는 사실이다. 매뉴얼이 실종되고 도덕성, 사명감 마저 함께 사라진 진도 앞 바다 참사가 너무나 치욕스럽다. 꽃다운 학생 수 백 명이 한꺼번에 수장되도록 놔두는 엉망진창인 나라. 혈관이 역류하는 자괴감 앞에 내몰린 참담한 시간들이다. 세계인들의 시야에서 그저 사라지고 싶을 뿐이다.
 
눈앞에서 수장되는 어린것들을 2시간이나 그냥 바라만 본 국가는 우리에게 무엇인지를 끝없이 묻게 했다. 솟아오르는 분노를 가눌 길 없어 모두가 공황상태다. 선장은 도망가고 선채가 뒤집혀 가라앉는 지옥을 생중계로 지켜봐야 하는 국가. 어린 여승무원 한 명이 남아 대피를 돕다가 주검으로 건져지는 장면은 과연 이곳이 21세기 대한민국인가를 의심케 하고도 남는다. 움직이지 말라는 엉터리 방송으로 붙잡아 두고 아무도 탈출을 도와주지 않았다니 이러고도 소득 3만 달러를 바라보는 선진국이라고 떠들어 댔던가. 그 허언들이 수치스러워 이마를 찧고 싶은 심정이다. 그들을 수장시킨 이 야만을 어디서부터 도려내야 하는가.
 
뜻있는 이들은 말한다. 이 모든 비극이 오로지 성공만을 향해 질주해온 "지름길 문화"의 그늘이라고. 빨리빨리 끝내고 대충대충 살면서 적당히 눈감아야 남보다 먼저 출세할 수 있다고. 튀지 말고 말하지 말고 눈치껏 지내다가 적당할 때 내 잇속이나 챙기면 최고라고 믿어왔던 우리들의 단면이라고. 기본을 따지거나 절차를 고집하면 조롱당해온 사회. 상대를 짓밟고 뒷통수를 쳐서라도 앞서가야 직성이 풀리는 세월들을 살아왔다.
 
선장은 선장다워야 하고 어른은 어른다워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는데. 기본이 망가진 나라의 어두운 미래를 들여다 본 칠흑 같은 밤이었다. 무너진 메뉴얼이 21세기 이 나라의 발목을 잡고 있다. 수많은 첨단장비들을 들여오면 뭘 하나. 사람들을 개조시키지 않으면 또 일어날 일들인데.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이 정부의 의지로 이름까지 바꾸며 법석을 떤 결과가 이 정도였는지 도로아미타불 '안전행정부'라는 손가락질이 무색하다. 기득권 세력에 줄이나 대고 노력하지 않으면서 이익을 얻으려는 풍토가 세월호에 비춰진 한국의 양심이다.
 
기본이 생략된 세상의 비극은 이미 곳곳에서 거친 숨결로 차오르고 있었다. 출세와 이재에 목숨 걸고 몰려다녔던 지난날들의 저급함이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 아픈 정치사가 그랬고 압축 성장에 도취해온 경제개발이 그랬으며 편 가르기가 횡행한 사회풍경이 그랬다. 누구를 비난하고 원망할 필요도 없이 우리 스스로 그려온 자화상이다. 통곡하고 싶다. 늦은 만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도착을 앞당기겠다는 세월호의 선택은 공개된 관행이었다. 그렇게 배워온 부끄러운 유산이다. 궂은 날 출항하지 말고 규정된 항로를 따라 가는 기본을 지키지 않아도 문제없도록 만들어온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이 지경 속에서 우리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자만하고 부질없는 건배나 외치던 닭짓은 이제 그만두자. 세월호 참사가 이 시대 우리나라의 축소판 같다는 트위터 메세지가 최고의 공감을 얻는 이유가 있다. '책임 있는 자들이 먼저 도망가는 나라' 라는 절규가 청년들의 피를 끓게 하고 있다. 어린 청춘들만 사지로 내몬 악몽 앞에 뒤늦게 면피성 호들갑을 떠는 정부라는 괴물의 실체. 구조된 사람숫자 하나도 제대로 파악 못하는 구석기 시스템은 분노를 넘어 어떤 뜨거움을 왈칵 솟구치게 한다. 뒤집힌 선박의 처참한 모습. 이것이 대한민국의 맨 얼굴이다. 과장하지도 포장하지도 말자.
 
백성들을 향해 감언이설하고 선거라는 푸닥거리를 통해 온갖 호사를 다 누리는 정치며 권위와 아집의 작두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권력의 모습이며 돈 되는 사업이면 모조리 빨아들이려는 천민자본주의가 합작해 만들어낸 한국병.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야 된다고 외치면서 커튼 뒤에서는 그들만의 리그에 열중하는 한 대한민국은 삼류국가다. 언제쯤 비정상의 정상화가 실현될지 허공에 던져보는 슬픈 질문들로 잔인한 달 4월이 깊어간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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